책이름 : 폭력과 모독을 넘어서
지은이 : 김명인
펴낸곳 : 소명출판
문학평론가 김명인이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이후 17년 만에 새 비평집 『폭력과 모독을 넘어서』를 내놓으며 자신의 본령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김명인하면 1987년 6월 국민대항쟁, 민중문학의 시대를 선포했던 야심찬 테제 「지식인 문학의 위기와 새로운 민족문학의 구상」부터 떠올랐다. 나는 그동안 문학평론가의 가벼운(?) 에세이 세 권을 잡았을 뿐이다. 『잠들지 못하는 희망』, 『내면 산책자의 시간』, 『부끄러움의 깊이』.
문학평론가는 말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전 과정은 폭력과 모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식민주의와 전쟁과 냉전체제와 군사독재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그리고 편협한 민족주의와 완고한 가부장제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을 저질렀고, 그 피해자의 인격과 존재에 역시 지속적인 모독을 가해왔다.”(9쪽) 그동안 그는 동시대의 한국문학에 대한 환멸로 비평과 담을 쌓고 살았다. 그의 눈에 2008년 용산 철거민 참사와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진저리 처지는 사건은 한국소설이 나르시시즘에서 빠져나와 바깥으로 눈을 돌리도록 한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책에 실린 글들은 지난 15여 년 동안 일상화된 신자유주의의 폭력과 모독이 전면화된 한국사회 변화의 기록이었다. 촛불 혁명과 정권 교체, 그리고 페미니즘과 젠더 전쟁이 사회 전면에 대두되었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2015년 신경숙 표절사건, 2016년 문단 성추문 연쇄사건. 「여자들이 온다」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젠더소설들은 ‘해방의 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었다. 김애란, 김금희, 황정은, 박민정, 최은영 등 일군의 여성 작가들은 여성적 당파성으로 무장했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세계의 폭력과 폭압에 의해 고통 받는 모든 타자의 해방을 위한 문제제기이며 싸움이었다.
2부는 실제비평으로 ‘세월호의 사람’ 작가 김탁환의 소설집 『아름다운 그대는 사람이어라』, 고통의 공명과 연대감을 촉발시킨 한강의 『소년이 온다』, 문제의식을 비평언어로 이론화할 줄 아는 시인을 발견하게 된 박영근 산문전집, 전태일 다시 읽기, 고통받는 사람들의 곁을 꾸준히 지켜 온 작가 김하경의 『워커바웃』, 당대 노동자 계급의 삶 전체를 드러낸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독재정권에 의해 살해당한 8명의 억울한 죽음을 다룬 김원일의 『푸른 혼』까지.
3부의 4편은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분석과 자기비판적인 글들이었다. 8·90년대를 지속했던 성장과 그 과실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분배의 결과였다. 오래 지나지 않아 민주항쟁을 주도했던 이른바 민주화세력들조차 신자유주의 도입 초기의 강렬한 풍요의 유혹에 영혼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양극화·야만화 과정에서 항쟁주체의 상당수는 20대80, 10대90으로 가파르게 심화되는 불평등구조에서 살아남았다. 그들의 일부가 신자유주의 자본독재의 상층부를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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