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땅의 눈물 땅의 희망

대빈창 2021. 10. 19. 07:00

 

책이름 : 땅의 눈물 땅의 희망

지은이 : 최창조

펴낸곳 : 궁리

 

풍수학자 최창조(1950 - )는 우리 민족의 전통 지리사상 풍수학을 오늘의 현실에 접목시키고 학문으로 승화시킨 자생풍수의 주창자이자 완성자였다.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는 완전한 땅이란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건 땅이건 결함이 없는 것은 없었다. 도선 풍수의 근본은 일부러 결함이 있는 땅을 골라 그를 고치고자 했다. 그러기에 자생풍수는 바로 비보풍수裨補風水였다. 그에게 발복發福을 바라는 이기적 음택풍수陰宅風水, 즉 묘지풍수墓地風水는 후대 사람들의 욕심이 만든 잡술雜術일 뿐이었다. 도선풍수는 우리 민족 고유의 ‘고침의 지리학’, 치유治癒‘의 지리학’ 이었다.

전남 해남 달마산 미황사가 앉은 자리는 산 정상부의 급경사면과 아래쪽의 완경사면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위쪽 암산岩山과 아래쪽 토산土山의 접점이었다. 경계면은 암설과 토사의 퇴적이나 산사태의 위험성이 상존하는 곳이었다. 평상시 절에 상주하는 스님들은 경계 요원이었다. 유시시에 스님들은 투입할 수 있는 노동력으로 신속히 전환될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식 풍수의 건전성이자 묘미였다. 우리 풍수의 시조 도선은 이렇게 문제 있는 땅을 선택하여 절을 세웠다.

대선大選이 돌아오면 청와대 터의 풍수적 길흉에 대해 이 땅의 장삼이사들은 한마디씩 떠들어댔다. 청와대 터는 1426년 경복궁 후원後園 이었다. 일제는 용맥(龍脈, 산의 정기가 흐르는 산줄기)을 자르려 1939년 이곳에 총독관저를 지었다. 이승만은 1948년 정부수립 후 경무대라고 이름을 지었다. 4·19 혁명 후 윤보선은 이름을 청와대로 바꾸었다. 이 책에서 풍수학자는 청와대 터에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청와대 터는 경복궁의 내맥이 내려오는 길목으로서 풍수상 반드시 땅을 훼손치 말고 보호해야 하는 곳이었다. 일제는 의도적으로 식민통치 기관 총독관저를 그곳에 지어 이 땅을 모욕했다.

최창조는 땅의 생김새를 보고 명당과 좋은 집터를 찾는 중국 이론 풍수를 거부했다. 사람과 땅 모두를 거둘 수 있는 자생풍수는 아픈 땅을 치료하고, 거기에 민중이 깃들 수 있게 했다. 책의 부제가 ‘물과 바람의 길을 찾아서’였다. 풍수학자의 발걸음은 이 땅의 산하 곳곳에 머물렀다. 황해도 구월산·성불사成佛寺, 평양 단군릉 등 북녘 산하와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거제도 청마 유치환 출생지, 전북 진안 용담댐, 원주 부론 노곡, 문경 농바우農岩, 완도 노구산, 반남·고성 고분, 김수로왕릉·허황후릉, 관악산 호압사虎壓寺 등.

책은 땅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질서에 인간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논리를 적응시켰다. 민중화가 홍성담의 그림 20점과 사진 27컷, 지형도 14점이 독자의 눈을 밝혀 책읽기의 진도를 도왔다. 책은 2000년 6월에 초판 1쇄를 발행했다. 20여년 만에 먼지 앉은 책을 다시 펼쳤다. 그동안 나는 풍수학자 최창조의 몇 권의 책을 잡았다. 자생풍수의 주장은 자연과 조화, 사람 사이의 공동체를 이루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토건공화국 대한민국의 몰골은 한마디로 절망적이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이제 콘크리트 미학에 길들여져 하루라도 포클레인이 눈에 띄지 않으면 불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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