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이름만 이삐먼 머한다요

대빈창 2021. 10. 20. 07:00

 

책이름 : 이름만 이삐먼 머한다요

지은이 : 이대흠

펴낸곳 : 문학동네

 

표제부터 전라도 사투리가 물씬 풍기는 『이름만 이삐먼 머한다요』는 시인·소설가 이대흠의 산문집이었다. 시인의 신간 시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창비, 2018)을 잡다가 허전하여 집어 든 산문집이었다. 2007년 9월에 초판이 나왔으니, 14년의 시간이 묵은 글들이었다. 시인은 사투리를 직접 새기고 들어야겠다는 다짐으로 고향땅 전라도로 이주했다. 책은 십여 년간 시인이 남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난 이들과의 따뜻한 인연을 구수한 사투리로 담아냈다.

1부 ‘거그 배 꽃 존 디’는 시인이 만났던 사람들의 삶이 빚어 낸 웃음과 슬픔이 오롯이 담긴 25편의 글이 실렸다. 시인은 단골식당 담양장터 진미식당에서 화투를 치시는 순창 복흥리에서 시집 온 김쌍둥이라 불리는 할머니를 만났다. 시인은 할머니를 설득해 이름을 알아냈다. ‘김한네’였다.

 

“와마! 이름이 겁나 이삐구마이, 무다라 숭겠소?”

“이름만 이삐먼 머한다요.”

 

뭐라도 하나 더 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대치 아짐, 시인과 말하는 통에 열쇠를 찾지 못했어도 말을 시켜줘 고마워하는 장순기 할머니, 시인이 맡겨 놓은 카메라 가방 대신 김치통을 건넨 장흥 회진의 여관 최접심 할머니 등. 카메라 하나 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넉살좋게 말 붙이는 시인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끈끈한 정과 웃음으로 화답했다.

2부 ‘수동떡집 사람들’은 시인의 가족 이야기를 10편의 글에 담았다. 수동떡은 어머니의 택호였다. 칠십 여년을 살아오면서 밥상을 차려 본적이 없는 아버지, 미물이 죽을까봐 싱크대에 뜨거운 물을 붓지 못하게 하는 어머니, 에맨살 먹은 시인과 제대로 된 삭힌 홍어, 일 년에 한두 번 친지와 동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추석명절 고향 방문, 취우 선생(아버지)의 집들이 翠雨堂 현판식과 일생을 고된 농사일로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의 뜨개질, 부모님의 금혼식을 준비하는 팔남매 형제들의 우애 등.

3부 ‘말으 샐팍에 서서’는 전라도 사투리의 독특한 표현에 대한 14편의 글을 모았다. 시인의 고향 장흥 출신의 소설가 송기숙,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 김현주, 김해림 등. 시인은 위선환, 조윤희, 김영남, 문정영 등. 보성의 소설가 조정래, 시인 문정희. 강진은 시인 영랑. 해남의 시인 이동주, 김준태, 김남주, 황지우, 고정희 등. 내가 알고 있는 곡성의 ‘국토’ 시인 조태일과 소설가 공선옥이 보이지 않았다. 시인은 전라도 지역에서 수많은 소설가와 시인이 배출된 것을 전라도 방언이 지닌 풍부한 어휘력과 비유성에서 찾았다.

가족사진은 시인이 직접 찍었고, 표사를 쓴 시인 이병률이 본문의 인물사진에 도움을 주었다. 시인은 말했다. “나는 민중들의 삶을 엿보며 스스로 위무할 수 있었고, 새로운 방언을 만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금맥을 발견한 듯 하루종일 들뜨기도 하였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는 섬학교 학생들과 주문도 답사를 온 시인 강제윤이 언뜻 지나가는 소리로 건넨 말을 떠올렸다. “섬의 나이 드신 분들을 한 분 한 분 인터뷰해서 글로 남기면 좋을 것 같아요. 그분들의 삶이 바로 민중의 역사거든요.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역사는 사라지고 말아요.”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게으름은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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