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희망

대빈창 2021. 10. 21. 07:00

 

책이름 : 희망

지은이 : 리영희

펴낸곳 : 한길사

 

12월 5일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다. 나의 영혼이 이 정도나마 혼탁한 세상을 꿰뚫어볼 수 있게 젊은 시절 정신적, 사상적 무지를 일깨워 준 선생의 영정 앞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 이 땅의 청년들에게 정의와 진실을 가르쳐 준 선생의 신산함 삶을 돌이켜 보면 눈물이 앞선다. 2010. 12. 7. 『숲 생태학 강의』 책 리뷰를 올리며 덧붙인 글이었다.

『전환 시대의 논리』(1974), 『우상과 이성』(1977), 『8억인과의 대화』(1977),『분단을 넘어서』(1984), 『역정』(1988),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그동안 내가 잡았던 선생의 책들과 초판 출간년도다. 80년대말·90년대초 나는 우리시대 사상의 은사,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의 글을 만났다. 88년 창간한〈한겨레신문〉에 실린 선생의 칼럼은 각별했다. 2006년 『리영희 저작집』(전 12권, 한길사)이 출간되었다. 『희망』은 선생 사상의 정수와 대표성을 지닌 글들을 가려 뽑아 한 권으로 묶었다.

민족분단의 비극, 통일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군부독재와 민주주의 투쟁 등 사회과학 담론과 인간존재론 그리고 역사, 평화, 신앙, 자연, 예술 등에 관한  명편들이 모였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과 제5장은 개인적 체험과 내면적·정신적 이력을 다룬 글이 실렸다. 제2·3·4장의 글은 민족과 역사, 인간과 사회, 문화예술과 신앙, 교육 등 인간사의 모순과 대립의 쟁점을 다룬 글들이었다. 제6장은 자료하나 없는 독방에서 쓴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어 대법원에 낸 상고이유서였다.

노신은 『눌함』에 실린 「자서」에서 “빛도 공기도 들어오지 않는 밀폐된 방에서 지식인은 벽에 작은 구멍이라도 뚫어 밝은 빛과 공기를 넣어주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럴 때 우상은 파괴되고, 사회는 진보하며, 희망은 있다고 보았다. 선생은 글쓰기의 사표로 늘 노신을 늘 존경했다. 책의 표제를 『희망』으로 지은 이유였다.

군부독재를 향해 서릿발같은 사자후를 토해냈던 선생의 삶은 투옥과 연행, 감금이라는 형극의 길을 걸었다. 옥살이의 괴로움을 토로한 「서대문 형무소의 기억」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낮에도 컴컴한 0.9평 독방에서 뺑기통 구멍을 통해 줄줄이 기어 올라오는 누런 구더기 떼를 쓸어내면서 수없이 많은 손때에 달아 시커먼 대나무 젓가락으로 밥(?)을 먹었다. 겨울 독방은 머리맡의 물그릇이 꽁꽁 얼었다. 손가락, 발가락은 모두 얼어 터져 진물을 토해냈다. 일제 때 가동되었던 스팀도 뜯어내버린 서대문형무소의 시설은 해방된 조국에서 처우가 더 열악했다.

5부는 선생의 인생에 영향을 준 인물과 독서편력에 관한 글들이었다. 선생이 믿고 따른 유일한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중국사상가·작가 노신(1881 - 1936). 노신의 「왔다(來了)!」, 고은 시인의 『만인보』, 페르디난트 퇴니에스의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 - 순수사회에의 기본개념』, 17세기말 독일의 미술사상가 에두아르드 푹스의 『그림과 함께 보는 풍속의 역사』, 1920 - 30년대 조선의 혁명가 장지락의 생애를 기록한 소설 님 웨일즈의 『아리랑』, 가족들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아내 윤영자의 일기장까지.

책은 지난 2005년 출간된 선생의 자서전적 성격의 대담집 『대화』의 속편으로 기획되었다. 엮은이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말했다. “민족사적인 당면과제를 풀어내는 데 탁월한 분석력을 보여줬던 (리영희 선생 사상의) 밑바탕에는 풍요로운 인문학적인 소양과 인간중심주의 사상이 깔려 있었음을 강조해야 할 절박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군립도서관 대출희망도서 첫 순위에 리영희 선생의 구술자서전 『대화』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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