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대빈창 2021. 10. 28. 07:30

 

책이름 :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지은이 : 유용주

펴낸곳 : 걷는사람

 

가장 가벼운 짐(창작과비평, 1993) / 크나큰 침묵(솔, 1996)

그러나 살아가리라(솔, 2000) / 쏘주 한잔 합시다(큰나, 2005) /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작은것이아름답다, 2013)

 

그동안 나는 시인 유용주(劉容珠, 1959 -   )의 초창기 시집 두 권과 산문집 세 권을 잡았다.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조용한 곳에서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온 몸으로, 깊숙이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강물이 흐르고 눈이 내렸다.” 시인은 중학 1년 중퇴 후 아버지의 술빚에 팔려 자장면 배달부가 된 후 구두닦이, 공장 노동자, 벽돌공, 우유 배달원, 금은방 종업원, 노가다 잡부 등 스무 가지가 넘는 밑바닥 삶을 살아왔다. 그렇다. 시인은 2011년, 40년 만에 고향 전북 장수에 돌아왔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는 4부에 나뉘어 28꼭지의 글을 담았다. 1부 ‘첫사랑’은 엄마의 죽음을 묻는 첫사랑 선이와의 40년 만에 만남 , 읍내 정육점의 고기를 써는 절세미녀, 기차짐을 들어 준 인연으로 결혼을 앞둔 처녀와의 하룻밤 풋사랑, 해발 1,000미터 화전민촌으로 야반도주한 사촌간 남매, 베트남처녀와 늦 결혼하는 풍찬노숙의 친구, 바람난 과부댁의 항변.

2부 ‘부드러움이 시를 낳는다’는 시인의 전매특허 ‘사람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캐나다에서 시체실 청소부로 일하며 모국어로 소설을 쓴 박상룡, 원주 단구동에서의 『토지』 완간기념잔치, 창작실을 전전하는 여든 중반을 넘긴 시조 시인의 기구한 삶, 미당문학상 후보를 거부하라는 충고에 멀어진 선배 시인, 경북 영천 농부시인 이중기, 신문사 평생교육원 시 실기 지도 강사 J선생.

3부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끝모를 고통과 슬픔, 배기량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이 땅에서 경차를 끄는 시인, 2박3일 짧은여정의 일본 후쿠오카 실비여행, 섬진강·금강 발원지의 고향 산골에 마련한 작은 창작실. 4부 ‘시인은 학력이 필요없다’는 역경은 글쓰기의 스승, 시련뿐인 삶에서 시인에게 위안이 되었던 문학, 수분국민학교 친구들, 20년 넘게 만나 헤어진 금수저 H, 국민학교 입학식에서 길고 긴 교장의 훈시로 오줌을 싼 어린 시인의 부끄러움, 시인 박경희·이흔복, 소설가 김성동과의 인연, 외갓집 여수 앞바다의 추억.

문학평론가 임규찬은 발문 「귀향과 기억, ‘메주콩’의 미학」에서 시인은 이렇게 평했다. “정확히는 거대한 몸집의 초식동물이다. 그러나 그의 글에 뭔가 포효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그건 맹수의 포효보다는 오래 삭힌 울음에 가깝다.”(251쪽) 나는 책을 잡고서 시인 이흔복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을 알았다. 나는 그의 첫 시집 『서울에서 다시 사랑을』(실천문학사, 1998)과 세 번째 시집 『나를 두고 내가 떠나간다.』(솔, 2014)를 잡았다. 품절된 두 번째 시집 『먼길 가는 나그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솔, 2007)를 아쉬워하며 네 번째 시집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엊그제 텔레비전을 보는데, 거문도 특집을 하는 거야, 거기서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 우리는 그의 말에 다음 책 제목을 가져왔다. 그런 흔복이가 지난 추석에 쓰러져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231쪽) 문학기행으로 동료문인들과 거문도를 찾은 이흔복 시인이 밤낮 술만 마시다가 엉뚱하게 바다를 봤다는 말에 동료들이 되묻자 답한 말이었다. 책은 시인 박남준, 유용주, 안상학, 소설가 한창훈이 현대상선 컨테이너 하이웨이호로 부산항에서 남지나해, 인도양을 거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까지 함께 한 항해航海 일기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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