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한밤중에 잠깨어
지은이 : 정약용·정민
펴낸곳 : 문학동네
2012년은 다산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였다. 다산의 탄생일은 유네스코 관련 기념일로 제정되어 전 세계가 함께 기리는 날이었다.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500여 권의 책을 서술한 최고의 석학 다산 정약용(1762 1836). 그는 스물두 살에 과거에 급제하고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신유박해로 다산의 운명은 급전직하했다. 1801년 3월 경상 포항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10월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해 다시 전남 강진으로 정배되었다. 40세에서 57세에 이르는 유배기간 18년 동안 다산은 조선 최고의 지적 성취에 빛나는 수많은 저작을 쏟아냈다.
『한밤중에 잠깨어』의 부제는 ‘한시로 읽는 다산의 유배일기’였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지은 한시 중 자기 독백에 가까운 것들을 모아 다산의 시점에서 일기 쓰듯이 정리했다. 외롭고 고단한 가장 절망적인 시간을 보낸 다산의 속마음이 담긴 한시였다. 다산도 세상을 원망하고, 세태에 분노하며, 자기연민에 빠지고, 절망을 드러냈던 한 인간이었다. 자기 독백에 가까운 작품들은 다산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극한의 절망과 좌절 속에서 다산의 한시는 한 인간의 내면 풍경과 인간 의지의 위대함을 보여 주었다.
다산의 유배는 장기에서 7개월, 강진에서 18년을 살았다. 장기 시절 자기 독백을 쓴 시가 강진 시절보다 두 배 가량 많이 실렸다. 장기 유배기(1801. 3. 9 - 1801. 10. 20)의 83편, 강진 유배기(1801. 11. 5 - 1818. 9. 10)의 45편으로 128편의 한시를 담았다. 고전인문학자 정민은 한시 원전을 싣고, 그 뜻을 직역했다. 그리고 다산의 시점에서 의역했다. 표제는 「밤夜」(104 - 105쪽)의 마지막 두 행,
遙知苕上月 저 멀리 소내 위엔 달이 떠올라
流影照西墻 그림자가 서쪽 울을 비치겠구나.
에 이어 고전인문학자는 이렇게 의역을 덧붙였다 ‘아내도 내 생각에 잠을 못 이룰까? 자다 벌떡 일어나 저 달빛을 함께 볼까? 밤은 참 길다.’에서 인용했다. 첫 시 「나를 비웃다 自笑 - 진창에 빠진 물고기 自笑 10-1」(12 - 13쪽)의 직역 전문이다.
취한 듯 술 깬 듯 반평생을 보내니 / 간 곳마다 이 몸의 이름만 넘쳐난다. / 온 땅 가득 진창인데 갈기 늦게 요동치고 / 하늘 온통 그물인데 날개 마구 펼친 듯해. / 제산齊山에 지는 해를 뉘 묶어 잡아맬까 / 초수楚水에 바람 치니 마음대로 갈 수 있나. / 형제라도 운명이 다 같지는 않은 법 / 우활하여 물정 모름 혼자서 비웃누나.
다산은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에서 말했다. “천하에 가르쳐서는 안 되는 두 글자의 못된 말이 있다. 소일消日이 그것이다. 아,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1년 365일, 1일 96시각을 이어대기에도 부족할 것이다. 농부는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애쓴다. 만일 해를 달아맬 수만 있다면 반드시 끈으로 묶어 당기려 들 것이다.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날을 없애버리지 못해 근심 걱정을 하며 장기 바둑과 공 차기 놀이 등 하지 않는 일이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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