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옛 농사 이야기

대빈창 2021. 11. 3. 07:00

 

책이름 : 옛 농사 이야기

지은이 : 전희식

펴낸곳 : 들녘

 

글 쓰는 농부 전희식의 열 번째 책이었다. 나에게 그동안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이야기 『똥꽃』(그물코, 2008)과 귀농귀촌 길잡이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한살림, 2016)에 이어 세 번째 책이었다. 농부 전희식은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80년대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인천 대공장 파업을 이끈 노동운동가였다. 해방정국이후 50년 만에 합법공간에 진출한 진보정당 한국노동당의 부위원장이었다. 1994년 전북 완주로 귀농했고, 2006년부터 전북 장수에서 자급자족 농사를 짓는 농부로 살아왔다.

들녘 귀농총서 58 『옛 농사 이야기』는 4부로 구성되었다. 겨울부터 이듬해 가을까지 1년 열두 달 옛 농사 이야기를 담았다. 선인의 지혜가 담긴 전통 농사법과 연장, 가축, 씨앗관리, 거름 만드는 법과 농촌 문화 그리고 농촌살림 이야기를 계절별로 엮었다. 옛 농부에게 농사는 자급자족하는 삶의 기본이었다. 이웃과의 만남과 교류를 형성하는 장이었다. 그들은 자연 생명을 귀하게 여겼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꾀했다. 1970년대 농업의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농업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개발독재 정권이래 정부는 농약·비료·농기계, 경지정리, 시설하우스, 과원 조성, 정책자금을 지원했다. 농업은 단지화·대규모화·영농화로 줄달음질 쳤다.

‘신청하면 딱 보름 만에 모판이 논으로 공급되는 세상이다. 40일에서 50일 걸리는 모기르기가 15일로 줄었다.’(93쪽) 육묘공장이었다. 나의 삶터 주문도의 벼농사는 아직(?) 옛 방식이었다. 자가채종한 볍씨나 보급종을 헐거운 그물망에 담아 온탕소독기에 넣어 이틀간 소독하고 아귀(볍씨 맹아)를 틔웠다. 빛을 차단하고 온도를 높인 발아실에 쌓은 모판의 볍씨가 새끼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싹을 세웠다. 못자리에 싹튼 모판을 깔고 부직포를 덮었다. 대략 한 달 자란 모를 물을 실은 본답에 이앙기로 모내기를 했다.

‘모내기 때는 써레질과 논두렁질, 모춤 대기 등 여러 일을 하는 사람이 등장’(125쪽)했다. 모를 찌거나 심는 일은 농사가 몸에 밴 모꾼(상일꾼)만이 할 수 있었다. 물못자리 논의 모를 쪄서 짚으로 모춤을 묶었다. 모춤은 손아귀에 가득 쥐어지는 어린모를, 뿌리에 붙은 흙을 논물에 씻어내고 묶었다. 모춤 대기는 뒷일꾼으로 찐 모를 논배미마다 날라 와서 적당한 간격으로 모춤을 무논에 던져놓았다. 모꾼들은 한 손에 모춤을 쥐고 다른 손으로 못줄에 맞추어 두세 포기씩 꽂았다. 모내기의 강행군은 손가락의 근육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어른들은 그것을 자개바람 일었다고 말했다.

‘콤바인은 나락베는 일, 볏단 세우기와 말리기, 탈곡과 풍구질을 통합해버렸다.’(23쪽) 나는 80년대 초까지 존재했던 용궁패의 어엿한 일원이었다. 나락이 고개를 숙이면 낫으로 벼를 베었다. 논바닥에서 말라가는 볏단 간수하기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말랐다 싶으면 낫으로 볏단을 뒤짚었다. 손으로 일일이 묶은 볏단을 논두렁에 세웠다. 알곡을 노리는 기러기와 오리를 쫓기 위해 참깨단과 허수아비를 세웠다. 먼동이 트기도 전에 용궁패는 새벽밥을 급하게 먹고 논으로 나섰다. 오야지가 바람 방향을 탐지하고 탈곡기와 발동기를 앉혔다. 고된 탈곡일은 어두워져야 끝났다. 한달 보름여를 들판에서 살아야 그 많던 볏낫가리가 짚낫가리로 변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인간의 삶은 앞날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농부 전희식은 말했다. “옛 지혜를 되짚어보고 현재 우리가 지닌 자연을 회복하고 보존하는 삶을 꾀하는 노력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희망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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