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감시와 처벌의 나날
지은이 : 이승하
펴낸곳 : 실천문학사
시선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시인동네, 2015) 개정판을 잡고 이승하(李昇夏, 1960 - )의 시에 매료되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에 이어 『감시와 처벌의 나날』은 세 번째 잡은 시집이었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뼈아픈 별을 찾아서』, 『예수·폭력』이 책장에서 어깨를 겨누고 있었다. 시집은 광기 3부작의 마침표를 찍는 시집이었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을 빙자한, 권력의 유형·무형의 폭력을 고발한 『폭력과 광기의 나날』(세계사, 1993)이 재출간되기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 시인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공포, 감시, 처벌을 시적 형상화로 고발했다.
‘30년 동안 신경정신과병원에 면회를 다녔습니다···. 교도소와 구치소, 소년원을 들락거린 지도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흰 벽, 높다란 벽, 쇠창살이 박혀 있는 창문을 보고 와서 시를 썼습니다.’ 시인은 자서에서 말했다. “오늘도 벽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바칩니다.” 시집은 1, 2부에 나뉘어 62시편이 실렸다. 해설은 유희석(문학평론가)의 「귀 없는 자화상」이었다.
시집은 교도소·정신병동에서 표출되는 개인의 내밀한 정신적 내상內傷을 다루었다. 1부는 무기수·사형수에 관한 시들로 한 사회의 모순이 어떻게 수인의 모습으로 발현되는지를. 2부는 폐쇄병동에서 청춘을 다 보내고 초로初老에 도달한 누이가 나왔다. 2부의 첫 시 「누이의 초상 1」(61 - 63쪽)에 갈래머리를 딴 활달했던 어린 누이 사진이 실렸다.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의 일부를 인용했다.
「감금과 감시」(32 - 33쪽)에서 네팔 여인 ‘찬드라 구릉’을 다시 만났다. 작가 최성각의 산문집 『달려라 냇물아』를 잡고 네팔노동자의 비극적 사건을 알게 되었다. 찬드라 꾸마리 구릉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대신섬유공업에 입사해 일하다가, 93년 11월 실종되었다. 그런데 6년 4개월 후 용인정신병원에서 발견되었다. 분식집에서 라면 한 그릇을 먹고 계산하며, 한국말이 어눌한 꾸마리는 식당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연행되었다. 행정편의주의의 희생양이 된 그녀는 정신병동에 갇혔다. 생태소설가 최성각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산군의 산마을인 찬드라 꾸마리 구릉의 고향을 찾아가 사죄했다. 나는 책장을 덮고, 소설가가 활동하는 환경운동단체 《풀꽃평화연구소》를 후원했다.
시집은 제14회(2016년) 천상병귀천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천상병 시인은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간첩으로 몰려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옥살이를 하면서 심한 구타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사실을 몰랐던 동료들은 시인이 죽은 것으로 잘못알고 유고 시집을 발간했다. 『감시와 처벌의 나날』은 교도소·정신병동에 갇힌 사람들의 인권유린과 가녀린 희망을 그렸다.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던 천상병 시인의 용서와 화해 정신에 시집은 부합했다. 시집을 닫는 마지막 시 「빛의 혼」(131쪽)의 전문이다.
햇살이 가루 가루 떨어져 내리는 날 너는 / 왜 책상 밑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니 / ······빛이 무서워요 오빠 // 햇살 가루가, 바람의 살결이 무섭다고 / 너는 바들바들 떨고 있니 / 오늘따라 혼 없는 빛이 너무 눈부셔서? / 어제부터 넋나간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 아파할 줄 모르는 여린 혼아 / 너를 받아줄 집 한 채 / 이 세상 어디 가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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