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비슷한 것은 가짜다
지은이 : 정민
펴낸곳 : 태학사
한문학을 대중화하는 작업에 정열을 쏟아 붇는 고전인문학자 정민(鄭珉, 1961 - )의 신간이 눈에 뜨였다. ‘정민의 연암독본1, 2’ 두 권의 책을 군립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좌星座” 조선 후기의 대문호 연암 박지원(1737 - 1805)의 글을 풀어 쓴 책들이었다. 나는 그동안 연암의 글을 돌베개 출간 세 권의 『열하일기』와 학고재에서 펴낸 두세 권의 연암 산문집을 잡았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는 20년 만에 펴낸 같은 표제의 개정판이었다. 연암의 산문들을 25가지 주제로 나눠 번역하고 해설을 곁들였다. 연암의 문학론, 예술론, 인생론, 친구들과의 우정, 시대를 비판한 글 등 다채로운 글이 실렸다.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는 10년 전에 나온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의 개정판이었다. 옛 선비들의 독서법과 문장론, 연암 박지원의 산문미학이 실렸다.
섬에 돌아오자마자 3주 동안 읽을거리로 군립도서관에서 대여한 책 다섯 권을 책상에 풀어 놓았다. 아뿔사! 찬찬치 못한 나의 덜렁거리는 성격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의 발행년도가 2000년이었다. 어깨를 겨누고 있었던 구간과 신간을 확인않고, 되는대로 한 권의 책을 빼들었던 것이다. 할 수 없었다. 개정판으로 교환하려면 하루를 소비해야 했다. 아쉽지만 묵은 책을 그냥 잡기로 했다.
책은 획일화된 가치 척도로 세계를 규정코자하는 결정론적 세계관에 대한 거부를 다룬 첫 번째 이야기 「이미지는 살아 있다, 코끼리의 기호학 象記」에서 여덟 살 터울의 열여섯에 시집가서 고생만하다 병을 얻어 마흔 셋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누님에 대한 묘지명 「강물빛은 거울 같았네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까지 스물다섯가지 이야기를 묶었다.
표제는 여덟 번째 이야기 「심사心似와 형사形似 綠天館集序와 答蒼厓」에서 빌려왔다. “비슷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진짜는 아닌 것이다. 천하에서 이른바 서로 같은 것을 두고 반드시 ‘꼭 닮았다’고 하고 구분하기 어려운 것은 또한 ‘진짜 같다’고 말한다. 대저 진짜 같다고 하고 꼭 닮았다고 말할 때에 그 말 속에는 가짜라는 것과 다르다는 뜻이 담겨있다.”(106쪽)
「책머리에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연암의 글은 한 군데 못질한 흔적이 없는데도 꽉 짜여져 빈틈이 없다. 그의 글은 난공불락의 성채다. 방심하고 돌진한 장수는 도처에서 복병과 만나고 미로와 만나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5쪽) 연암의 다채로운 40여 편의 산문 가운데서, 나는 ‘연암 문학론의 핵심’(167쪽)이랄 수 있는 ‘법고이지변法古而知變 창신이능전創新而能典’이 마음에 와 닿았다. 옛 것을 본받더라도 오늘에 맞게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더라도 법도에서 어긋나지 않게 한다는 뜻이었다. 마지막은 연암이 먼저 세상을 떠난 형님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322쪽)의 전문이다.
我兄顔髮曾誰似 형님의 모습이 누구와 닮았던고
每憶先君看我兄 아버님 생각날 젠 우리 형님 보았었네.
今日思兄何處見 오늘 형님 그립지만 어데서 본단 말가
自將巾袂映溪行 의관을 갖춰 입고 시냇가로 가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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