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양의 노래

대빈창 2021. 11. 11. 07:30

 

책이름 : 양의 노래

지은이 : 가토 슈이치

옮긴이 : 이목

펴낸곳 : 글항아리

 

요즘 재일조선인2세 디아스포라 서경식의 책을 즐겨 잡고 있다. 〈한겨레〉에 연재했던 칼럼을 묶은 『디아스포라의 눈』에 「한 교양인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글 한편이 실렸다.

“나는 인생을 열차와 같다고 상상할 때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우연한 계기로 이 세상이라는 열차에 타게 된다.··· 우연히 함께 탄 승객들 중에 가토 슈이치라는 ‘먼저 탄 승객’(선객)이 있었던 것은 내겐 작은 행운이었다. 때가 되면 누구나 그 차량을 내려간다. 지금 선객 가토 슈이치 선생이 객차에서 내렸다.··· 한국에서 『양의 노래』를 번역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한국의 독자가 가토 슈이치를 어떻게 읽을지, 꼭 알고 싶다.”

가토 슈이치(加藤周一, 1919 - 2008)는 20세기 일본 최고 지성으로 참여지식인이었다. 요즘 말로 그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조부는 간토 평야의 대지주였다. 외조부는 이탈리아 유학파 출신의 인텔리였다. 아버지는 도쿄의 개업의였으나, 돈벌이와 무관한 금욕주의적 합리주의자였다. 혜택 받은 집안에서 자란 그는 수재학교를 다니며 우수한 성적으로 학년을 건너뛰며 엘리트로 성장했다.

도쿄대 의학부를 졸업하고 의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학창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이 컸던 그는 시·소설·평론을 썼다. 1958년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에 참가하면서 의업을 접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며 반전 평화운동을 벌였다. 노벨상 수상작가 오이 겐자부로, 철학자 쓰루미 슌스케와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9조 모임’을 만들고 생을 마칠 때까지 평화헌법 수호운동에 헌신했다.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저항과 문학』등 50여 권의 저서와 『일본인의 사생관』 등 15여 권의 공저가 있다.

『양의 노래』는 가토 슈이치가 50대에 출간한 자서전이었다. 그의 반생半生을 담은 책은 한 인간의 견고한 정신이 형성되는 과정을 담은 놀라운 기록이었다.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간 극단의 시대에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한 세계시민의 문명비평 비망록이었다. 표제를 『양의 노래』로 붙인 것은 저자가 양의 해인 1919년에 태어났고, 또 성질이 온순한 양과 상통하는 점도 없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양의 노래, 그후」는 1960년 이후 오늘까지 30여 년을 가리켰다.

가토 슈이치는 진심으로 일본의 패전을 원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자 그의 세계는 밝은 빛으로 가득 찼고, 모든 것이 기쁨으로 넘쳤다. 그날 비로소 살기 시작할 것이라고 기록했다. 나의 눈길은 이 구절에서 머물렀다. 가토 슈이치는 마르세유에서 출항한 화물선을 타고 3년 만에 일본 고베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6주가 걸리는 항해 끝에 막바지 부산에 기항해서 바라본 밤풍경이었다.

- 대신 미국,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미군이라는 존재가 지프차, 매춘부, 군에서 암시장으로 반출된 미제 담배와 함께 그곳에서 군림하고 있었다. “저기 보세요. 도시가 반쯤 어둡죠? 교대로 반반씩 송전하고 있는 겁니다. 부두에 갖다 댄 미국 선박 발전기에서요”라고 선장은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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