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디아스포라 기행
지은이 : 서경식
옮긴이 : 김혜선
펴낸곳 : 돌베개
디아스포라(diaspora)는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과 그들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대문자 고유명사였다. 오늘날 이 말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산 민족으로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와 땅을 떠나도록 강요당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소문자 보통명사로 사용된다.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코리언 디아스포라는 600만 명에 달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한반도에서 세계 각지로 흩어진 재일조선인, 중국의 조선족, 구소련의 고려인, 아메리카 드림을 꿈꾼 이민자, 독일로 떠난 광부·간호사 이주노동자, 아기수출국의 오명을 뒤집어 쓴 국제 입양아 등이 그들이었다.
서경식(徐京植, 1951 - )의 아버지 서승준은 1928년 여섯 살의 나이에 철도노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1970년대 〈재일유학생 간첩단사건〉에 연루되어 둘째 형 서승은 19년, 셋째형 서준식은 17년의 옥살이를 했다. 양심수에 가해진 극악무도한 고문 전향을 이겨내고, 두 형제는 이 땅에서 최초로 비전향 장기수로 출옥했다. 재일한국인2세로서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형들을 옥바라지 하면서 서경식은 디아스포라의 아픔을 뼛속까지 느꼈다.
『디아스포라 기행』은 재일조선인2세의 시선으로 바라 본 정치, 사회, 예술에 대한 단상을 엮었다.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의의를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과 연계해 해명했다. 여행에서 만난 다양한 예술작품과 사람, 장소를 디아스포라 관점으로 새롭게 조명했다. 책은 재일조선인의 처지를 '말라가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의 붕어'로 비유한 프롤로그와 4개의 장,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예술을 다루었다.
1장 ‘죽음을 생각하는 날’은 런던 교외 하이게이트Highgate의 공동묘지 마르크스의 무덤을 찾고, 이탈리아 토리노 프리모 레비의 무덤을 떠올렸다. 재일조선인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국회의원 아라이 쇼케이의 자살까지. 2장 ‘폭력의 기억’에서 광주 망월동 묘지의 단식투쟁 끝에 옥사한 박관현. 광주교도소를 택시 안에서 바라보며 고문당하던 셋째형 서준식. 미국에서 만난 여성의 남동생이 수감되어 있던 곳을 떠올렸다. 2000년 5월 3회 광주비엔날레 대상을 수상한 시린 샤네트(Shirin Neshat, 1959년 이란 출생)의 아이덴티티 문제를 다룬 〈환희Rapture〉에서 이란의 종교·정치 체제에 의한 여성 억압을 비판했다. 인구 20만의 독일중부 도시 카셀에서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현대미술국제전 ‘도쿠멘타 Ⅱ’에서 1963년 우간다 태생의 인도계여성 자리나 빔지의 〈아웃 오브 블루〉를 만났다.
4부 ‘추방당한 자들’은 장 아메리가 독일 점령하에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투옥· 고문당한 벨기에 브렌동크 요새를 찾아,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의 〈유대인등록증을 들고 있는 자화상〉을 떠올렸다. 누스바움은 누군가의 밀고로 1944년 7월 20일 아네 펠카 플라테크와 함께 은신처에서 체포되었다. 벨기에서 출발한 마지막 호송열차로 아우슈비츠로 이송된 그는 1944년 8월 9일 사망했다. 찰츠부르크 음악제의 첫 회는 카푸치너베르크의 츠바이크 자택에서 1920년에 열렸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1942년 2월 22일 전 세계가 파시즘의 총칼아래 신음하는 것을 보며 아내와 함께 피신했던 브라질에서 음독자살했다. 마지막으로 서경식은 「죽음의 푸가」의 유대인 시인 파울첼란의 무덤이 있는 티에의 공동묘지를 찾았다. 첼란은 1970년 4월에 파리 센강의 미라보 다리에서 투신자살했다.
디아스포라는 20세기를 관통한 제국주의, 식민주의, 국가주의가 초래한 비극으로서, 폭력에 대한 증인이었다. 재일조선인 2세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은 추방당한 자의 시선이 살아 꿈틀댔다. 코리언 디아스포라로 〈오하이오 프로젝트 7〉의 니키 리Nikki S.Lee. 〈대지의 노래〉의 다카야마 노부루, 동백림 사건의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일본에서 활동하다 북한으로 귀화한 화가 조양규, 디아스포라의 고통이 떠올려지는 캐나다 데이비드 강의 퍼포먼스, 표면이 활자로 뒤덮인 야구공 크기의 금속구 〈활자구〉의 문승근, 미희 나탈리 르무의 〈백인 - 100인〉, 민영준의 〈결정적 순간들〉, 재일조선인1세 시인 김하일은 한센병 환자로 손가락으로 점자를 읽을 수 없어 아직 감각이 남아있는 혀끝으로 점자를 읽었다. 그의 처절한 영혼의 고통이 드러난 문장이다.
지문 찍을 손가락이 없어 외국인등록증에 나의 지문이 없어.(229쪽)
점자역의 내 나라 조선의 민족사를 오늘도 혀끝이 뜨거워질때까지 읽었다.(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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