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지은이 : 정민
펴낸곳 : 태학사
나는 근래 조선지성사를 전방위적으로 탐구하여 옛글에 담긴 깊은 사유와 성찰을 독자에게 일러주는 고전인문학자 정민의 책을 자주 잡았다.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는 ‘정민의 연암독본 2’로 10년 전 발간된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의 개정판이었다. 옛 선인들의 독서법과 문장론, 연암의 산문미학을 실었다.
옛 선비들의 독서법 다섯 가지는 소리 내서 되풀이해 읽는 인성구기因聲求氣의 독서, 정보를 계열화하여 정리하며 읽는 초서鈔書 방식의 독서, 의문을 품어 궁리하고 따져보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독서, 오성을 열어 통찰력을 길러 주는 이의역지以意逆知의 독서, 텍스트를 넘어서 천하 사물로 확장되는 살아있는 독서 등이었다.
우리의 문장론은 정법定法을 내재화시키고 활법活法을 추구함으로써 획일화를 거부하고 다양한 변화를 지향했다. 옛 문장 이론 속에서 법은 규칙이 아니라 원리로만 작용했다. 글쓰기가 곧 깨달음으로 세상을 읽고 자신을 세우는 통찰력의 근간이었다. 표제는 연암의 「경지에게 답하다」 두 번째 편지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오색 채색을 문장이라고 한다면 문자로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책을 읽었다.’(46쪽)
연암의 파천황적 사유가 담긴 산문은 「황금대기黃金臺記」, 「홍덕보묘지명 洪德保墓誌銘」, 「주공탑명 塵公塔銘」에 관한 글 3편과 척독尺牘과 서간書簡에 관한 글 2편이 실렸다. 『열하일기』중 「황도기략黃圖紀略」에 실린 ‘황금대’는 전국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황금을 대 위에 올려놓고 천하의 어진 선비를 불어 모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황금대는 어진 신하를 구하는 임금의 마음을 기리를 찬양을 상징했다. 연암은 이를 중세적 지식인의 명분에 절어있는 허위를 폭로하는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묘지명은 망자의 생애 사실을 적어 무덤 앞에 묻어 두는 글이다. 끝에는 그의 생애를 간추린 운문 형식의 명사銘詞가 붙었다. ‘덕보’는 홍대용의 자字이다. 홍대용이 세상을 갑자기 뜨자, 연암은 깊은 슬픔을 담아 묘지명을 지었다. 연암은 당대 허위에 찬 지식인 사회를 향한 큰 분노를 담았다. 탑명은 불교 승려의 사리탑이나 부도에 새기는 명문이다. 승려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요약해서 소개하고 후생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글이었다. 연암은 존재存在와 무無의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하여 스님 제자들의 미망迷妄을 깨우쳐주려 했다. ‘연암체燕巖體’가 지닌 개성이 생생하게 드러난 절품絶品이었다.
척독은 일반적으로 짤막한 편지글을 가리켰다. 허물없는 사람 사이에 경쾌하게 주고받는 일상적 대화의 정감 있는 글이었다. 고전 인문학자는 연암의 척독 속에 담긴 문예미를 검토했다. 『연암선생서간첩燕巖先生書簡帖』은 32통의 편지묶음이었다. 첫 번째 편지는 박영철이 연암의 수적手蹟을 구하는 박기량에게 보낸 답장이고, 마지막 편지는 연암의 손자 박규수가 삼화선三和船의 처리에 대한 문의 편지였다. 연암의 30통 편지는 안의현감으로 있던 60세 때인 1796년 1월 27일부터 면천군수였던 1797년 8월 23일까지 안의와 면천에서 주로 한양집에 보낸 편지를 날짜순으로 정리했다. 서간은 연암의 알려지지 않은 벼슬살이 모습이 구체적으로 정리되고, 연암을 둘러싼 인물이나 당시의 정황, 그리고 그의 글쓰기와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이 담겼다. 마지막은 「창애에게 답하다答蒼厓」(231쪽) 일곱 번째 편지의 전문이다.
그대는 여장을 풀고 안장을 내리시지요. 내일은 아마도 비가 올 듯합니다. 시냇물은 우는 소리를 내고, 물에선 물비린내가 납니다. 섬돌까지 개미 떼가 밀려듭니다. 황새는 울면서 북으로 들고, 안개는 서리어 땅위를 내달립니다. 유성은 살처럼 서편으로 흘러가고, 바람은 동쪽에서 불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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