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인도 방랑
지은이 : 후지와라 신야
옮긴이 : 이윤정
펴낸곳 : 작가정신
데칸고원으로 떠나는 뭄바이 역의 혼란은 끔찍했다. 카시미르주의 주도 스리나가르에서 사기를 당해 개천 위의 고물 배에서 하루를 묵었다. 여행 경비 부족으로 파힐감 마을에서 야반도주했다. 숙박비를 절약하려 남인도 첸나이 역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자를 만나 사흘을 동숙했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손님을 받지 않는 히말라야 산기슭 데라준의 히말라야 로지 호텔에서 사흘을 묵었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콜카타와 하우라 도시를 흐르는 갠지스 강의 지류 후글리 강에서 강물에 떠내려오는 여자 시체를 쪼는 까마귀를 보았다. 타르 사막의 모래폭풍을 만나 휘장을 내린 고물 버스에 갇혀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갠지스 강 하구 칠카레이크 호수에서 원시적 오리 사냥꾼을 만났다. 두 달을 머문 숙소는 라자스탄 지방에 할거하던 약소왕국의 성을 개조했다.
여행은······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놀랄 만큼 어리석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가득하고, 결국 그것은 기묘한······ 예컨대 고르지 않은 거친 땅에 고무공을 굴리면 무수히 많은 돌부리에 머리를 찧으며 자반뒤집기를 하게 되는······ 그런 것이리라.(244 - 245쪽) 책은 인도의 날것을 그대로 드러냈다. 후지와라 신야(1944 - )는 도쿄예술대학에서 미술을 배우다 중퇴하고, 1969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일본이 고도성장의 마력에 이끌려 사람의 죽음조차 관리하는 폐색사회로 치닫자 삶의 진정성을 묻고자 떠난 여행이었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삼년 간의 인도여행을 기록한 책은 세상의 많은 젊은이들을 배낭을 멘 채 세상의 길 위에 서게 만들었다. 후지와라 신야는 작열하는 열구熱球 아래서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는 인도 대륙의 풍경과 대기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었다. 열기로 달아오른 대지와 사막을 걷고 걸으며 인도의 민중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카시미르에서 푸시카르를 거쳐 첸나이로 마이소르의 길 위에서 그는 말했다. “언제나 돌아갈 곳을 마련해두고 ‘날것’의 행위를 그림이나 글자로 얼버무리며 떠돌아다닌 여행을 도대체 어떻게 ‘방랑’이란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단 말인가.”(123쪽)
여행서의 바이블을 놓쳤다니. 뒤늦게나마 책을 만난 것이 다행이었다. 작가 정찬주의 선방禪房에 관한 책을 잡다가, 그가 권하는 책에서 ‘압도적 리얼리즘’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그렇다. 나는 완전히 압도당했다. 내가 잡은 책은 2009년에 초판이 나온 재출간본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는『동양기행 1·2』가 소장된 길상작은도서관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후지와라 신야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말했다. “첫 한국여행 이후 여러 번 한국을 방문하면서 드는 생각은, 해가 갈수록 한국의 젊들이들이 보수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정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을 허물어뜨리고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이 책이 그런 젊은이들의 등을 떠미는 작은 힘이 되길 바란다.”(15쪽)
우리에게 인도는 어떤 의미인가. 인도여행을 통해 오랜 시간 품어왔던 스스로의 물음에 해답을 구할 수 있을까. 후지와라 신야가 인도를 여행한 지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시절, 일본이 고도성장을 구가할 때 인도는 빈곤한 나라였다. 지금 인구대국 인도는 중국에 이어 전일적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뛰어들어 맹렬히 질주하고 있다. 인도의 작가·사회운동가 아룬다티 로이를 접하며, 나는 인도를 막연히 동경과 신비의 땅으로 대할 수 없었다. 인도는 지금 대규모 건설 공사, 댐·광산 특구로 인한 홍수, 가뭄, 사막화로 인도토착민과 불가촉천민 수천만 명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매년 인도농민 수만 명이 생활고에 찌들려 자살했다. 인도의 세계 굶주림 지수는 아프리카보다 심각했다. iT 업계를 필두로 떠오르는 신흥 경제대국, 할리우드를 위협하는 발리우드 영화산업으로 상징되는 인도자본주의는 이미 극렬한 만인과 만인과의 투쟁속으로 빠져들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뼈아픈 별을 찾아서 (0) | 2021.11.22 |
---|---|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0) | 2021.11.19 |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0) | 2021.11.17 |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0) | 2021.11.16 |
디아스포라 기행 (0) | 2021.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