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놈이었습니다
지은이 : 이덕규
펴낸곳 : 문학동네
농촌·농업·농민시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세월이 되었다. 나는 후원하는 격월간 인문생태잡지 『녹색평론』에 실린 서너 편의 시로 갈증을 해소할 수밖에 없었다. 출간된 지 6년이 지난 시집을 뒤늦게 잡았다. 그렇다. 시인 이덕규는 ‘농사짓는 시인’이었다. 시집은 제9회 오장환 문학상 수상작이었다. 3부에 나뉘어 63시편이 실렸고, 발문은 김근(시인)의 「사내의 대지」였다. 시인의 첫 시집 『다국적 구름 공장 안을 엿보다』(문학동네, 2003)는 시인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했던 유년·청소년 시절을 담았다. 두 번째 시집 『밥그릇 경전』(실천문학사, 2009)은 농사를 짖고, 자연과 소통하며 생태·생식에 대한 상상력을 풀어냈다. 나는 두 시집을 진즉에 잡았었다.
시인은 경기 화성 정남 괘랑에서 유년을 보냈다. 건설회사의 토목기사로 노조운동을 하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후 건설업자로 외곽도록 건설현장에서 10여 년을 보냈다. 토목 일을 하면서도 시를 써야겠다는 마음을 한 켠에 품어왔다. 1998년 「 양수기」로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토목기사에서 전업시인으로의 전향이었다. 시인은 고향의 보통저수지 인근에 하루도 쉬지 않고 꼬박 1년을 걸려 흙집을 지었다. 동료시인들은 시인의 작업실을 토우방土愚房이라 이름 지었다. 그는 온 힘과 기운을 쏟아 지은 토우방을 문화예술 공동체로 꾸려나갈 계획이었다.
시인은 말했다. “저는 농사 근본주의자입니다. 농사는 생태적인 부분들과 교착점이 있고 자연스럽게 환경 변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됐지요. 작금의 기후적 재앙과 자본주의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막기 위한 대안은 농사밖에 없다고 확신합니다.” 표제는 시골에서 자란 이들이 밤 마실 다녀오다 어둠 속에서 한번쯤은 마주쳤던 그 놈(도깨비)을 읊은 「놈」(50 - 51쪽)의 한 행이었다. 마지막은 「끙게질」(16 - 17쪽)의 일부분이다.
큰 황소가 한겨울 먹고 놀면 사람이 생쥐만하게 보인다는데요 무엇이든 그냥 닥치는 대로 / 꾹, 밟고 싶어진다는데요 아―흐, 몸이 근지러워 / 말뚝에 치대고 들이받고 비비는 놈을 바로 논밭으로 밀어 넣으면 씨근덕 불끈덕 / 삐둘빼뚤 갈지자로 갈아대기 일쑤인데요 / 이른봄 아버지는 통나무 썰매 위에 일 마력짜리 발동기만한 돌멩이를 올리고 / 먼지 뽀얗게 날리며 들판 몇 바퀴 뺑뺑이를 돌리는데요 이른바 끙게질이라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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