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동양기행 1

대빈창 2021. 11. 25. 07:30

 

책이름 : 동양기행 1

지은이 : 후지와라 신야

옮긴이 : 김욱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

 

『인도 방랑』을 책씻이하고, 관내 도서관의 후지와라 신야의 책들을 검색했다. 《길상작은도서관》에 『동양 기행 1·2』가 소장되어 있었다. 독서목록의 다른 책들을 뒤로 물렸다. 주민자치센터 2층의 도서관은 협소했으나 책은 가득했다. 고전인문학자 정민의 『아버지의 편지』와 함께 세 권을 대여했다. 출간된 지 5년 미만이라는 제한에 묶여, 후지와라 신야의 다른 책들을 희망도서로 신청할 수 없었다. 일단 두 권의 책으로 만족해야겠다.

후지와라 신야가 스물네 살에 미술학도를 작파하고 인도 여행을 떠난 것이 1969년이었다. 그의 여행은 단속적으로 20년 넘게 이어졌다. 『동양기행』은 1980년 겨울 터키 이스탄불을 시작점으로 동쪽으로 향한 402일의 기록이었다. 중근동, 동남아시아, 중국 상하이, 홍콩을 거쳐 서울을 지나 일본 오사카의 고야산에서 고단한 방랑을 마쳤다. 책은 사인펜 한 자루와 35mm 카메라 한 대, 광각렌즈 하나로 쓴 기행문이었다. 『동양기행 1』은 터키의 이스탄불, 앙카라, 안탈리아, 흑해黑海 항로, 인도 캘커타, 6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터키는 10년 만에 엄청난 규모의 시베리아 한랭기단이 덮쳐 맹추위가 이어졌다. 두 대륙(유럽과 아시아)을 한 도시에 품은 이스탄불의 보르포루스 해협의 폭설이 쏟아지는 밤 창녀촌에 머물렀다. 배를 타고 떠나면서 보이는 것은 검은 그림자 사이로 서양의 마지막 대지가 사라져갔다. 보이는 것은 흩날리는 눈발과 무한히 넓은 바다뿐이었다. 앙카라에서 거대한 여자(먹어치우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들은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주문하고 몽땅 먹어치운 후 손님에게 그 값을 떠넘겼다. 식당의 매상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터키에서 버젓이 인정받는 직업이었다. 따뜻한 지중해 연안도시 안탈리아에서 허름한 갱지에 인쇄된 반나체의 여인을 찾아 다시 앙카라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정부 관리였던 남자로 성전환수술을 했다. 나이트 클럽 가수와 창녀로 생활하다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흑해 항로는 매주 한 번 화요일에 6,000톤급 선박 에게호가 이스탄불에서 출항했다. 흑해는 검은 수평선과 검은 바다를 보여주었다. 배를 따라오는 한 무리의 흰새들은 배와 함께 흑해 항로를 떠돌면서 생을 보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슬람 지역 장거리 버스 여행은 북시리아 라카를 1주일 만에 돌파하고 이란의 들판을 지나 파키스탄 카라치에 1주일 만에 도착했다. 똑같은 풍경이 한없이 펼쳐지는 풍경에서 여행의 무익함을 깨닫고, 그는 여행의 헛수고를 축적하기로 결심했다.

인도 캘커타는 지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로 30만 명의 거지들이 부랑하고 있었다. 초티와라 호텔(무허가 싸구려 호텔)에서 스스로 소 한 마리 값에 팔려온 창녀 다니야와 비에 젖는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캘커타의 중심가 네루 스트리트를 밤중에 걷다가 불빛에서 지옥의 색조를 엿보았다. 풍뎅이처럼 오그라든 몸뚱이로 배영을 하듯 굽은 등을 땅바닥에 비벼대며 남자는 천천히 움직였다. 그는 시든 풀을 새끼줄로 단단히 묶은 50센티미터의 횃불을 어금니로 물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는 저 거리의 모든 불길이 그 남자의 입술에 물린 업화業火(지옥의 맹렬한 불길)처럼 오직 생존을 위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278쪽) 1권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후지와라 신야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이국의 여행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회와 인간의 삶, 현대 문명의 이면,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했다. 그렇다. 그의 동양 기행은 ‘영혼의 여행’이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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