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산들바람 산들 분다

대빈창 2021. 11. 29. 07:30

 

책이름 : 산들바람 산들 분다

지은이 : 최성각

펴낸곳 : 오월의봄

 

내가 ‘환경운동하는 작가’ 최성각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신춘문예당선 작품집』에 실린 중편소설 「잠자는 불」이었다. 80년대 중반의 어느해, 나는 낭만적 객기로 강원 도계의 탄광촌을 어슬렁거렸다. 젊은 혈기로 막장생활에 도전했으나 껄렁한 행색은 그것마저 퇴짜를 맞고, 지방소도시의 노가다로 세월을 흘렸다. 작가의 첫 소설집은 8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작으로 광산촌을 배경으로 한 『잠자는 불』을 표제로 삼았다. 그 시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는 소설 습작을 긁적거렸다. 탄광에 대한 회한을 곱씹으며 작가의 첫 소설집을 읽었다.

나는 격월간 인문생태잡지 『녹색평론』을 2008년부터 정기구독했다. 그 어름이었을 것이다. 생태산문집 『달려라 냇물아』(녹색평론, 2007)를 잡고 작가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택시 드라이버』(세계사, 1996), 『사막의 우물 파는 인부』(도요새, 2000)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작가는 1990년대 상계동 쓰레기 소각장 반대운동으로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1999년 환경운동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새나 돌멩이, 조개, 지렁이 등 비인간에게 환경상을 드리는 방식으로 환경운동을 펼쳤다.  《풀꽃세상》을 회원들에게 넘기고, 2004년 춘천 외곽의 툇골(退谷)에 《풀꽃평화연구소》를 세우고 산촌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달려라 냇물아』를 통해 네팔 여인 '찬드라 꾸마리 구릉' 사건을 알게 되었다. 이주노동자인 그녀는 93년 11월 실종되었다가, 6년 4개월 후 용인정신병원에서 발견되었다. 작가는 대한민국의 양심을 대표하여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꾸마리가 사는 산마을을 찾아가 사죄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울컥하며 감동을 받았다. 적은 돈이나마 《풀꽃평화연구소》에 후원금을 이체했다. 변변치못한 나의 성의에 작가는 《풀꽃평화연구소》와의 인연으로 출간된 책들을 보내 주었다.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알마, 20008), 『꽃짐』(이룸, 2009), 『날아라 새들아』(산책자, 2009), 『거위, 맞다와 무답이』(실천문학사, 2009) 등이었다.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생명평화운동 등을 벌이며 이 땅의 척박한 환경생태 인식을 갈아엎는 작가를, 나는 서해의 작은 섬에서 응원했다. 작가의 새 책이 나올 때마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동녘, 2010), 『쫓기는 새』(실천문학사, 2013) 크게 기뻐하며 부리나케 손에 넣었다. 부제가 ‘나는 환경책을 읽었다’인 『욕망과 파국』(동녘, 2021)이 기분 좋게 책장에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생태산문집 『산들바람 산들 분다』(오월의봄, 2021)를 군립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입고되자마자 대여를 받아, 이렇게 책을 펴들었다.

『산들바람 산들 분다』는 절판된 『달려라 냇물아』, 『날아라 새들아』에서 산촌생활의 글을 추스르고,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았다. 작가 최성각의 18년 여의 툇골 산촌생활의 모든 기록이 모아졌다. 1부 ‘봄, 마른 낙엽을 밀어내는 원추리 새순’은 거위 ‘맞다와 무답이’, 히말라야 당나귀를 키우고 싶은 소망, 헐값으로 지은 오두막, 뱀과의 싸움 무기 척사툇골도(斥蛇退谷刀),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는 장닭 ‘아무때나’, 구십평생 외눈 팔지 않고 땅과 함께 살아 온 앵두할아버지 등.

2부 ‘여름, 개울에 빠진 거위’는 잘려 버려진 가로수 버드나무가 몸통에 싹이 돋고 줄기를 틔웠다. 거위 밥을 훔쳐먹는 들쥐, 정자를 이전하는 힘겨운 노동, 수리부엉이한테 죽임을 당한 맞다와 절명한 무답이, 연구소앞 물웅덩이 버들치 300여 마리, 고양이 사료를 훔쳐먹는 물까치떼, 오남매 숯가마 등. 3부 ‘밤송이 속에 파고드는 달빛’은 총 20.7킬로미터의 미답의 길 임도 산책의 즐거움, 사마귀를 살리려고 차가 피해가게 한 소년의 감수성, 높이 20미터·수령 70년의 가래나무, 두 주일에 걸친 가래 씻어말리기, 정자 말벌집 제거, 자유로운 삶을 살다 간 열여덟살의 개 ‘빼빼’의 죽음.

4부 ‘겨울, 적설에 부러지는 귀룽나무 가지’는 음력 3월 3일 마을 동제의 제관 제복祭服, 연구소 마당에 뒤를 보는 뒷집 개 ‘흰둥이’, 고라니의 비명소리는 죽음을 앞둔 고통의 단말마가 아닌 수컷의 번식기 울음소리, 구룡령 휴게소에서 얻은 강아지 ‘봉단이’, 세밑 겨울 똑같이 나눈 세병의 들기름 가운데 하나를 연구소에 선물하신 앵두할머니, 채식식당 ‘나비야’의 목수 박사장, 각종 공구와 생활용품, 그리고 접시꽃 씨앗을 택배로 보낸 산야초.

“나는 실패한 환경운동가, 거듭되는 시위와 생태 에세이 따위로 절대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한, 빼도 박도 못한 비관론자다.”(201-212쪽)라고 작가는 말했다. 녹색평론 발행인이었던 故 김종철 선생은 최성각의 글을 이렇게 평했다.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그러나 아직도 찾아보기 어려운, 진정한 문학적 발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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