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동양기행 2

대빈창 2021. 11. 26. 07:30

 

책이름 : 동양기행 2

지은이 : 후지와라 신야

옮긴이 : 김욱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

 

히말라야 산맥의 서쪽 끝 라다크 티베트의 사원을 찾아가는 길은 골짜기 입구에서 13킬로미터, 고도 3,700미터로 공기가 희박해 10시간이 걸렸다. 절벽 아래서 하룻밤 노숙하고, 다음날 오후 절에 도착했다. 사원의 식사는 인생 최악의 먹을거리였지만 그것마저 정오 이후에 공양은 없었다. 후지와라 신야는 21일간 사원에 머물렀다. 버마 랑군의 길거리 의자에 앉았는데 어린 두 명의 소년이 너무 가깝게 붙어있었다. 소매치기를 의심하는 그에게 들려 온 말은 소년들이 눈부신 여름 햇살을 막아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만난 거리의 미친 여자 케오바는 10대 시절 방콕의 비구니였다. 그녀는 죽는 게 두려우면서도 수십 번 자살을 시도했다. 케오바가 8년 동안 묵었던 유곽은 천장 함석이 그대로 드러났다. 사방은 낡은 베니어판이었고 방바닥과 복도는 틈새가 벌어졌다. 후지와라 신야는 그 방에서 하루를 묵었다. 중국 상하이인의 눈에서 차가운 기운이 감지되는 이유는 그들이 사람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선 상대방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를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홍콩의 길거리 광장에서 만난 화가 셰이 리콴은 네 평 크기 방 하나의 빈민굴 아파트에서 동생과 살았다. 빌로드의 유화 속에 모르핀을 숨겨 운반하는 것으로 목에 풀칠했다. 형제는 중국 광동 촌놈이었다. 그들의 나이 스물다섯, 스물 두 살 때 돼지 방광을 허리에 매달고 바다를 헤엄쳐 홍콩에 온 불법 이주민이었다. 그 방광이 작은 제단에 모셔져 있었다. 후지와라 신야는 일본에 돌아와 오사카 근처의 고야산(1,200년 역사를 가진 진언밀교의 총본산)의 청정심원의 제일 구석진 방에서 지나왔던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이스탄불에서 일본에 이르는 동양 전역은 인도 대륙을 경계로 삼고 있다. 그 경계에 따라 서아시아의 광물세계, 동아시아의 식물세계가 분리되며, 두 세계를 이루는 본성 또한 정확히 분리되고 있다.”(73쪽)

『동양기행 2』에서 후지와라 신야의 발길은 티베트 사원과 버마 랑군, 태국 치앙마이, 중국 상하이, 홍콩의 온갖 먹거리가 팔리는 시장의 인간과 유곽의 여인들을 만났다.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후지와라 신야의 마지막 발길은 한국에 머물렀다.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야간통행금지 시절이었다. 청량리 어두운 골목에서 개인영업을 하는 늙은 창녀에게 붙잡혀 격한 실랑이 끝에 간신히 풀려났다. 카운터의 방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며, 새벽에 화장실을 찾다가 핏자국을 발견한다. 혈흔을 따라 들어간 방에 월경하는 창녀가 있었다.

후지와라 신야는 여행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나면서 ‘여행의 빙점氷點’이 찾아왔다.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에 흥미를 잃었고, 특히 인간은 더욱 귀찮았다. 또다른 여행을 통해 녹여버리고 싶은 그는 ‘동양’의 거리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후지와라 신야의 여행은 물질과 문명 너머에서 우리들이 잃어가고 있는 뜨거운 생명력을 발견했다. 독자들을 열광했고 찬사를 보냈다. '이제껏 읽어 본 많은 기행서적 중 최고로 꼽는 책. 여행에 대한 균형감 있는 시각과 깊이 있는 인생의 성찰. 진정한 여행의 가치를 표현한 작가의 위대함을 알 수 있는 책.' 이라고.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과 조선  (0) 2021.11.30
산들바람 산들 분다  (0) 2021.11.29
동양기행 1  (0) 2021.11.25
소로의 메인 숲  (0) 2021.11.24
아버지의 편지  (0) 202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