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아버지의 편지
지은이 : 정민·박동욱
펴낸곳 : 김영사
이황(李滉, 1501-1570): 『퇴계전서退溪全書』에서 10통 / 백광훈(白光勳, 1537-1582): 『옥봉집玉峯集』에서 15통 / 유성룡(柳成龍, 1542-1607): 『서애집西厓集』에서 7통/ 이식(李植, 1584-1647): 『택당집澤堂集』에서 11통 / 박세당(朴世堂, 1629-1703): 『서계집西溪集』에서 13통 / 안정복(安鼎福, 1712-1791): 『순암집順菴集』에서 7통 / 강세황(姜世晃, 1713-1791): 『표암유고豹菴遺稿』에서 4통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연암선생서간첩燕巖先生書簡帖』에서 11통 / 박제가(朴齊家, 1750-1805): 『초정전서楚亭全書』에서 11통 /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완당전집阮堂全集』에서 5통
『아버지의 편지』는 첫 장 “네가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가서 한번 가면 뒤쫓기가 어렵다. 끝내 농부나 병졸이 되어 일생을 보내려 한단 말이냐? 천번 만번 마음에 새겨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조선 윤리학을 집대성한 퇴계退溪가 아들 준寯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지막 장 “난을 치는 것은 종이 서너 장을 넘어서는 안 된다. 신기神氣가 한데 엉기고 경우境遇가 녹아드는 것은 글씨와 그림이 한가지다. 하지만 난을 치는 것은 더욱 심하니, 어찌 많이 얻겠느냐.”(274쪽) 난을 치는 것을 배우겠다는 양자 상무에게 보낸 추사秋史의 편지까지,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 10명이 자식에게 보낸 90여 통의 편지모음집이었다.
박지원은 직접 담근 고추장, 소고기 볶음을 서울집에 보내고, 아들 귀한 집에 태어난 손자의 모습을 궁금해 하고, 병든 아내와 허약한 며느리 걱정으로 애를 끓인다. 조선의 선비에게 가난은 일상이었다. 백광훈은 구황 대책으로 섬에 들어가 도토리 몇 가마를 주어와 가루를 내어 밥에 섞어 먹는 방편을, 박세당은 풋앵두를 따서 시장에 내놓아 곡식과 바꾸어 먹으라고 했다. 유성룡은 집안의 우환과 전란으로 공부할 때를 놓친 자식들에게 자신의 공부 경험을 들려주었다.
이식은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 갇혀 아들에게 남을 비방하는 말을 하지 말고, 아무 때나 나서지 말 것을 당부했다. 안정복은 아들에게 누이를 여자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적은 『내범內範』을 가르치고, 한글을 깨우치게 도우라고 일렀다. 강세황은 집안 살림 걱정으로 내가 죽으면 살아서 즐기지 않은 술이니만치, 제사상에 술을 올리지 말라는 다짐을 했다. 박제가는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함북 종성 유배지에서 종이와 붓이 없어 그때그때 기록할 수없는 괴로움을 호소했다.
자식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붓을 잡은 조선 선비들. 그들은 학자, 관료, 문인이기 이전에 아버지였다. 책 읽는 방법, 글쓰기 요령, 과거 준비, 집안에서의 처신 등에 대하여 자식들을 쉴 새 없이 다그쳤다. 편지의 행간에서 자식의 앞날에 노심초사하는 아버지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편지를 둘러 싼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한 머리말 「편지 속 아버지의 육성」에서 저자들은 말했다. “사실 그때 아버지들의 야단이나 지금 내가 내 자식에게 날마다 해대는 잔소리나 다를 것이 하나 없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보면, 도대체 세상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것이다.”(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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