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서양과 조선
지은이 : 강재언
옮긴이 : 이규수
펴낸곳 : 학고재
『서양과 조선』의 부제는 ‘그 이문화 격투의 역사’ 로 근대화에서 일본의 성공, 조선의 좌절을 낳은 비극의 원인을 사상적으로 조명한 역사 교과서였다. 동양 문화권에서 높은 문화를 자랑했던 조선이 근대화에 뒤처져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17 - 19세기 세계가 변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조선은 서양의 과학(西學)과 종교(西敎)를 어떻게 수용하였는지. 중국과 일본의 수용과정과 어떤 차이를 보였는지를 비교·분석했다.
1부는 17세기로 한문으로 번역된 서양의 과학서가 중국에서 조선으로 전래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마테오 리치(Matt대 Ricci, 1552-1610, 利瑪竇)는 예수회 선교사로 1601년 북경에 들어온 이래 계속 살았다. 그의 한역서양서(천문학, 수학, 역학易學 등)와 세계 지도를 통해 조선은 처음으로 서양을 알게 되었다. 로드리게스(陸若漢)는 비록 단기간이었지만 정두원과 직접 접촉하고 교육한 최초의 서양인이었다.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45)는 9년 동안 청의 심양에 볼모로 잡혀 있으면서 서양문물을 직접 접했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대항해시대의 선진적인 과학기술이 조선에 아무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2부는 18세기로 이 땅의 서학수용 사상을 개척한 이익(李瀷, 1681-1763)과 그의 제자 권철신(權哲身, 1736-1801)과 안정복(安鼎福, 1712-91)의 성호학파를 다루었다. 신후담(愼後聃, 1702-61)은 서교(천주교)에 대한 이익의 비판적 측면을 받아들여 유교적 논리로 천주교를 체계적이고 내재적으로 비판한 대표적인 학자였다. 북학파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은 탁월한 실사구시實事求是 안목의 소유자였다. 개명군주 제22대 정조(재위 1776-1800)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그들은 현실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3부는 19세기로 천주교 탄압으로 인해 서양 학문을 수용할 수 있는 길은 차단되었다. 그 폐해는 해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저자는 말했다. “약육강식의 시대를 살아가는 가치관으로서의 유교의 ‘의리’에 결박당해 부국강병을 위한 ‘공리功利’에 철저할 수 없었던 것에 사상적 비극의 근원”(242쪽)이 있었다고. 종장은 전 근대에 대등한 교린국이었던 일본과 조선이 근대에 들어와 일본은 제국주의로,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한 원인을 밝혔다. 일본은 서양의 종교와 학술을 분리하여, 양학을 수용하여 서양관에 일대 변혁을 이룩했다. 조선은 ‘쇄국양이’의 틀 속에 틀어박혀 아시아 최후의 ‘은자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재일조선인 역사학자 강재언(1926-1917)은 한국근대사, 특히 개화파와 개화 사상 연구에 크게 공헌했다. 제주에서 태어나 스무 살까지 살았던 그는 45년 해방되던 해에 서울에서 공부하며 좌익 활동을 했다. 극우단체 서북청년단에 테러를 당했던 그는 1950년 일본으로 밀항했고, 오사카에서 살았다. 그의 연구는 해방 이후 불모지에 가깝던 한국 근대사상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아무도 관심 없었던 우리 근대사, 근대 사상의 뿌리를 찾는 고투의 연속이었다. 강재언의 저작들은 조국의 다음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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