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지은이 : 김개미
펴낸곳 : 문학동네
시인 김개미(1971 - )는 2005년 『시와 반시』 시 부분에, 2010년 『창비 어린이』 동시 부분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동시집은 『어이없는 놈』에 연이어 네 권을 상재했다. 시집은 『앵무새 재우기』에 이어 두 번째 시집이었다. 시집을 손에 넣은 것은 웃음이 나올법한 시인의 이름 때문이었다. 본명일까. 필명이었다. 시인에 따르면 어릴 적 수줍음이 많아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들은 무시하거나 놀리지 않고 ‘개미’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나의 기억은 시인의 이름을 보며 20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웃마을 끝머리에 작은 군부대가 있었다. 부대원들은 키 큰 안테나가 둘러 선 들판 한 가운데 지하벙커에서 북한 전파를 잡아냈다. 정년을 한두해 남겨놓았던 부대 선임하사는 연년생으로 딸만 넷인가 다섯을 두었다. 아들 하나를 바라다 딸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자매들의 이름 끝 자는 모두 美였는데 셋째인가, 넷째인가가 ‘개미’였다. 딸부자 아빠의 성은 ‘전’이었다. 그 애가 멀리 눈에 뜨여도 나는 웃음이 나왔다. 선임하사는 술에 절어 코끝이 새빨갰다. 혹시 아빠가 딸의 이름을 지을 때 술이 덜 깼던 것이 아니었을까.
시집은 1부 ‘울면서도 웃었어’ 20편, 2부 ‘우선 좀 혼탁해져야겠다’ 20편, 3부 ‘소리에도 베인다는 말’ 20편 모두 60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황예인의 「어떤 어둠을 이해하고자 하는 안간힘」이었다. 표제로 쓰인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를 제목으로 단 시는 없었다. 「너보다 조금 먼저 일어나 앉아」(30-31쪽)의 4연의 첫 문장이었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 「한여름 동물원」(12쪽)의 전문이다.
안녕, 기억에 사로잡힌 앵무새야 // 안녕, 검은 바위에 꽃핀 이구아나야 // 안녕, 편도선이 부은 플라밍고야 // 안녕, 환청에 들뜬 원숭이야 // 안녕, 돌을 집어먹은 코끼리야 // 안녕, 눈동자에 시계를 가둔 고양이야 // 안녕, 버저를 눌러대는 풀매미야 // 안녕, 안녕, 안녕, 오늘의 태양을 기억해두렴 // 죽기도 살기도 좋은 날씨란다
p.s 리뷰의 마침표를 찍으며 '全 개미'는 '전 季美'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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