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지은이 : 박완서
펴낸곳 : 현대문학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 2010)는 팔순과 함께 등단 40주년을 맞은 작가 박완서(朴婉緖, 1931-2011)의 산문집이었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내 생애의 밑줄’에 실린 13편의 글은 노작가가 사람과 자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기쁨, 경탄, 감사, 애정을 담았다. 표제글 첫 꼭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십여 년 전 경기 구리시 아치울 단독주택 마당에서 잔디밭 김을 매는 작가의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죽은 피붙이들의 고통과 억울한 사정, 죽음을 외치지 못하면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글로써 위로받고 치유 받고 싶었다. 그는 뒤늦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나이 마흔이던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장편소설 『나목裸木』으로 등단했다.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지만 작가는 개성 관광은 저어대었다. 6-7킬로미터 밖에 선영先塋이 있는 고향 마을을 놔두고 개성 구경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섬진강 상류 곡성 한 마을의 기와집에 홀로 사는 할아버지의 소에 대한 애기를 K시인에게 들었다. 노인네는 송아지가 젖 뗄 무렵 우시장에 내다 팔았다. 새끼를 잃은 어미소가 여물도 안 먹고 슬피 울었다. 당신은 우시장으로 다시 가 수소문 끝에 송아지를 산 사람을 찾아내 웃돈은 얹어주고 송아지를 데려왔다. 다산 유적지를 돌아보며, 실학사상은 신실한 자유민주주의 사상 그 자체이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행복한 화해로 보았다.
남대문 방화사건으로 느낀 점은 문화재는 뛰어난 장인과 훌륭한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재력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자연의 풍상을 견디고, 사람들의 사랑과 공경을 받아 원형 위에 신비한 더께가 앉아야 했다. 손수 지은 더운밥 한 그릇이 손님에 대한 환대, 공경, 우정, 친밀감 등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온갖 좋은 것을 다 얹어줄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책 읽는 사람이 밑줄을 긋는 것은 그게 명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읽을 당시의 마음상태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2부 ‘책들의 오솔길’은 책들에 대한 짧은 글모음 13편이 실렸다. 시집은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문태준의 『그늘의 발달』,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애송시 100편』, 소설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이청준의 『별을 노래한다』 그리고 故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기대서서』, 정민의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제주 걷기 여행』, 외국작가로 존 코널리의 『잃어버린 것들의 책 』, 조나 레러의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반 고흐, 영혼의 자서전』까지.
3부 ‘그리움을 위하여’의 3편은 김수환 추기경, 박경리 소설가, 박수근 화백에 대한 추모글이었다. 돌아가신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1993년 《환경운동연합》 출범 당시 공동대표를 수락했다. ‘본전 까먹지 말고 이자로 먹고 살아야 한다’(248쪽)는 흥청망청 황혼기 자본주의의 막가파식 소비문화에 경종을 울렸던 말을 다시 만났다. 작가는 말했다. “내가 십년 만 더 젊어질 수 있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게 한 가지 있긴 하다. 죽기 전에 완벽하게 정직한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다. 깊고 깊은 산골에서, 그까짓 마당쇠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나 혼자 먹고살 만큼의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다.”(231-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