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염치와 수치
지은이 : 김남일
펴낸곳 : 낮은산
작가 김남일은 지난 3년여 동안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해방정국까지 한국 근대문학 작가와 작품을 탐독했다. 시, 소설, 일기, 편지, 산문 그리고 후인들의 평론과 평전을 훑었다. 그들은 고작 100여 년 전 이 땅의 공기를 호흡하던 문인들이었다. 등장하는 작가는 모두 23명이었다. 다른 작가는 한 꼭지를 썼지만, 이광수는 세 꼭지로 모두 25편의 글이 실렸다.
염상섭(1897-1963) / 이광수(1892-1950) / 변영로(1898-1961) / 김동인(1900-1951) / 심훈(1901-1936) / 김명순(1896-1951) / 최서해(1901-1932) / 정지용(1902-1950) / 임화(1908-1953) / 김기림(1908-?) / 이효석(1907-1942) / 이북명(1910-?) / 현진건(1900-1943) / 박태원(1909-1986) / 나혜석(1896-1948) / 백석(1912-1996) / 이태준(1904-?) / 신채호(1880-1936) / 김남천(1911-1953) / 김유정(1908-1937) / 이상(1910-1937) / 이육사(1904-1944) / 채만식(1902-1950)
“명색이 작가인 저부터도 한국 문학과 작가에 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책꽂이에 한국 근대문학을 위한 공간은 아예 없다시피 했습니다.” 한국 근대문학 작가들의 삶의 한 단면을 소설처럼 그린 『염치와 수치』는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광수’의 존재가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 작가는 유독 그에게 세 꼭지를 할당했다. "(이광수는) 어떤 결단의 순간마다, 후에 염치와 수치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크게 벌어질 지 훨씬 숙고했어야 했다."
우리 문학에서 여성 작가는 아킬레스건이었다. 김명순, 나혜석 두 명의 작가가 소개되었다. 23인의 근대문학 작가에서 나에게 생소한 이는 김명순이 유일했다. 여섯 번째 꼭지가 김명순을 다룬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류’였다」. 김명순은 우리나라 근대 최초의 여성 작가였다. 잡지 『청춘』(1917)이 주관한 ‘특별 대현상’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입선했다. 『신여성』(1924)에 평론가 김기진의 글이 실렸다. “육욕肉慾에 거치른 윤택하지 못한, 지방질은 거의 다 말라 없어진 퇴폐하고 황량한 피부” 문학이라는 이름아래 저지른 인격 살인이었다.
이응준은 일본군 육군대좌로 복무하다 창씨명 가야마 다케도시香山武俊로 해방을 맞았다. 그는 이승만 단독정부에서 초대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이응준이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복무하던 때, 김명순을 데이트 강간했다. 혼인을 거절당한 김명순은 자살을 시도했지만 행인에게 구출되었다. 천도교 잡지 『개벽』(1921)은 그녀를 “피임법을 알려주는 독신주의자”라고 조롱했다. 동인지 『창조』(1921)는 그녀를 동인에 초대하고, 다음호에 내쫓았다. 그녀는 거듭 자살을 기도했다가 겨우 살아났다.
대중잡지 『별건곤』(1927)은 “남편을 다섯 번째씩 갈고도 처녀 시인이라고 할 뱃심은 있을 것”이라고 추잡한 뒷담화를 실었다. 1939년 김동인이 발표한 소설 「김연실전」은 대놓고 김명순을 모욕했다. 김명순의 아명이 ‘김탄실’이었다. 소설은 어린 시절 정조를 빼앗긴 후, 오히려 무절제하고 문란한 연예 생활을 마치 특권인 양 구가하다 처참하게 몰락하는 신여성을 등장시켰다. 김명순은 문단과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짓밟혔다. 그녀는 식민지 신민으로 성차별의 고통에 시달렸다. 한국 근대 문단은 여성 작가를 스캔들로 소비했다. 1924년 김명순은 채 서른도 안 된 나이로 ‘유언’을 대신하는 시를 썼다. 마지막은 「유언」(1924)의 전문이다.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할 때 / 개천가에 고꾸라졌던지 들에 피 뽑았던지 /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오. / 그래도 부족하거든 / 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 보아라. /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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