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민들레꽃반지
지은이 : 김성동
펴낸곳 : 솔
작가 김성동(金聖東, 1947 - )의 『현대사 아리랑』(녹색평론사, 2010)은 좌익 혁명가·독립운동가 열전이었다. 『민들레꽃반지』(2019)는 현대사의 질곡을 온 몸으로 살다 간 부모의 해원을 위한 연작소설집이었다. 소설집은 1편의 단편소설, 2편의 중편소설, 부록으로 「인명 및 고유명사 풀이」, 역사사회학자 김동춘의 해설 「김성동의 특별한, 그러나 ‘위험한’ 제문祭文」으로 구성되었다.
표제작 단편소설 「민들레꽃반지」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아들을 죽은 남편으로 착각하여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먹였다. 어머니는 시집올 때 가져 온 무명으로 된 붉은 치마와 노랑 저고리 차림으로 민들레꽃반지를 정성들여 닦았다. 민들레꽃반지는 사회주의 운동에 몸과 마음을 던진 사람들이 남성이 여성 손가락에 끼워 주던 금반지였다. 중편소설 「고추잠자리」와 「멧새 한 마리」는 다섯 쪽 분량의 ‘제망부가 祭亡父歌’와 ‘제망모가祭亡母歌’가 서문처럼 실렸다.
‘안동安東 후인後人 김봉한金鳳漢은 이 중생 아버지이니, 석연石淵 또는 설화雪華가 스스로 지은 호號이며, 의경儀景은 그 자字이다.’(40쪽)
‘청주淸州 후인後人 한희전韓熙傳은 이 중생 어머니이니,‘칸요시코 한선자韓善子’가 왜식이름이며, 련희蓮姬는 아버지가 지어준 아호 겸 당호堂號이다.‘(121쪽)
부친 김봉한은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비선秘線 실세로 전국농민동맹충청남도본부위원장이었다. 김봉한은 밤이 이슥해서 돌도 채 되지 않은 아들을 보러 왔다가 석달 간 잠복했던 서북청년회 출신의 서울특경대원들에게 검거당했다. 1948년 11월 늦가을이었다. 사상전향 요구를 거부한 김봉한은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대전 산내 뼈잿골에서 불법 처형되었다. 좌익인사, 보도연맹원, 대전형무소 수형자 등이 포함된 8천 여명이 죽임을 당한 ‘대전 산내 학살사건’이었다. ‘계급해방을 이룬 바탕 위에서 민족해방을 이룸으로써 아름다운 인민나라를 만들고자 하였던 훌륭한 뜻이 친왜친미親倭親尾 민족반역배들 총칼’(42쪽)아래 사라졌다.
모친 한희전은 남편의 뜻을 좇아 여성해방의 이상을 실현코자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 남로당 충남 보령 면여맹위원장이었던 어머니는 모진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다. 모친은 연좌제의 고통 속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고문후유증으로 고생했다. 작가의 큰 삼촌은 우익청년단원들에게 맞아 죽었다. 소설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공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도륙당한 명문가名文家의 비극적 가족사를 다룬 자전自傳소설이었다.
반공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남한에서 ‘빨갱이 자식’의 삶은 기시밭길이었다. 공적인 직업을 얻을 수 없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했던 그는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좌익활동 경력의 멍에로 남한사회에서 문필로 밥을 산 소설가로 이문구, 김원일, 이문열을 떠올렸다. 『민들레꽃반지』는 제36회 ‘요산樂山 김정한 선생 문학상’을 수상했다. 요산은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에 앞장섰고, 해방정국에서 통일과 반독재운동에 앞장섰던 소설가였다. 요산의 삶과 문학정신을 기려 제정한 상이었다. 작가는 애통하게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제의로 소설을 써내려갔다.
“민주화가 됐지만, 여태도 완강하게 남아 있는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이죠. 검열의 무서운 눈초리를 피해보고자 하는 슬픈 바람에서 찾아낸 것이 제문 형식이었죠. 제아무리 악독한 세상이라고 해도 원통하고 절통하게 돌아간 제 부모를 제사 지내는 글을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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