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다, 그림이다
지은이 : 손철주·이주은
펴낸곳 : 이봄
『다, 그림이다』는 미술평론가 손철주와 서양미술사학자 이주은이 동서양의 미술에 대해 편지 형식을 통해 쓴 에세이였다. 한국미술을 사랑하는 남자가 먼저 글을 쓰면, 서양미술을 공부한 여자는 글과 그림을 보며 자신의 그림을 선정했다. 부제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이 말해주듯 손철주는 한국화를 보여주며 말을 꺼냈고, 이주은은 서양화와 함께 답했다. 책은 두 사람이 ‘그림 편지’를 주고받은 대화였다.
글은 현대인이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가치로, 그리움 / 유혹 / 성공과 좌절 / 내가 누구인가 / 나이 / 행복 / 일탈 / 취미와 취향 / 노는 남자와 여자 / 어머니, 엄마의 열 장으로 구성되었다. ‘유혹’ 편에서 손철주는 청나라 화가 호미胡湄의 「앵무희접도」를 들고 나왔다. 배꽃에 날아든 나비를 발견하고 같이 놀고 푼 앵무새가 발목에 묶인 쇠사슬로 몸부림치는 장면이었다. 그는 “유혹 중에 가장 강한 유혹은 닿을 수 없는, 닿아서는 안 될 것에 사로잡히는 유혹”(62쪽)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주은은 귀도 레니의 「술 마시는 바쿠스」로 답했다. 와인 통에 기댄 바쿠스가 오줌을 싸며 와인을 나발불고 있었다. “바쿠스는 술 한 잔 권하며 인생은 짧은 거라고, 세상 뭐 별거 있냐고, 왜 빈약해빠진 너희의 의지에 삶을 몽땅 거느냐고 조롱”(72쪽)하고 있다고.
동양 미술의 특징으로 손철주는 감필減筆과 사의寫意로 요약했다. 더 이상 줄이기 어려운 최소한의 획으로 대상의 정곡을 묘사하면서 그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주은은 서양 미술의 특징은 대상을 설득력있게 실물처럼 그리는 환영에 있다고 보았다. 소설가 김훈은 서문 「죽은 새들을 곡哭함」에서 말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솔거의 그림에 말을 걸 수가 있고 덧칠한 중의 그림에도 말을 걸 수가 있다.”(7쪽)고.
편집의 배려가 고마웠다. 그림에 눈 어두운 이들을 위해 많은 도판을 실었다. 서양화 30점, 중국화(전통, 현대) 29점, 일본화(판화 1) 2점, 전통 한국화 29점, 연적 2점이 실렸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그림은 조선의 문인화가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 - 60)의 「와운渦雲」이었다. ‘와운’은 ‘소용돌이 치는 구름’이란 뜻이었다. 종이에 수묵으로 그려진 그림은 화면 가득 먹장구름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구름은 회오리처럼 돌고, 우레와 벼락이 몰아치며 곧 소나기를 퍼부을 기세였다. 마지막은 그림 오른쪽의 화가가 직접 쓴 화제畵題다.
‘깊은 산 여름 장맛비를 맞으며 그대를 찾아갈 때, 종이와 먹물이 비에 젖어 못쓰게 될까 걱정했지요. 시를 쓰고 싶었지만 술에 취한 뒤 글씨를 쓰니 구름이 덩어리진 듯합니다. 바로 이 그림이 같으니 웃음거리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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