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달함지

대빈창 2021. 12. 30. 07:30

 

책이름 : 달함지

지은이 : 이종수

펴낸곳 : 푸른사상

 

나는 습관처럼 시집을 펼쳤다. 하지만 詩를 모른다. 자칭 활자중독자로 자투리 시간을 흘려보내기가 아쉬웠다. 휴대하기 간편한 시집을 손에 들기 시작했다. 시집이 한 권 두 권 책장에 쌓여갔다. 어느 날 이영광의 시집 『끝없는 사람』에 대한 짧은 리뷰에 낯선 댓글이 올라왔다. 닉네임이 ‘참도깨비’였다. 참도깨비는 충북 청주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장은 이종수 시인이었다. 시인은 흥덕문화의집 관장이었으며, 월간 『엽서시』를 발간하고 있었다.

시인은 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닭공화국」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첫시집 『자작나무 눈처럼』(실천문학사, 2002)과 산문집 『요놈이 커서 무엇이 될꼬』(좋은생각, 2004)를 냈다.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이 곁들여진 세 번째 시집 『안녕, 나의 별』(고두미, 2021)이 새로 나왔다. 『달함지』(푸른사상, 2012)는 십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이었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63시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조해옥은 해설 「혼융과 유목과 설화적 상상으로 초극하기」에서 “첫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삶의 본질적인 측면을 더 심화시키는데, 그것은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구체화된다.”(143쪽)고 평했다.

“그는 보잘것없는 작은 존재자들의 삶을 투시하면서 이종수 식 만인보萬人譜를 아름답게 펼쳐낸다.”(문학평론가 유종호) “우리가 내려놓기 바빴던 이야기와 거들떠보지도 않던 풍경이 귀하게 담겨져 있다.”(시인 박성우) 표사처럼 시집은 농성하러 크레인을 오르는 노동자, 떡 파는 할머니, 장날 식당의 할아버지, 꺾어진 90이 된 노총각들, 역전 앞 국수집 식객들, 가난으로 중학 진학을 포기한 시골소녀, 희망 없는 2인실 환자, 혈관이 숨은 병실의 어머니, 공과금·고지서를 한 움큼 들고 은행을 찾은 노인네, 아들 셋 낳고도 호적에 오르지 못한 씨받이 할머니,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출근하는 아내, 빛에 쫓겨 시골빈집으로 내려온 여동생 등.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고통과 의미를 시에 담았다. 마지막은 「돌오줌」(122 - 124쪽)의 일부분이다.

 

돌밭을 일구는 가풀막진 사람 심정이 그렇다고 / 반쯤은 돌이 오줌을 눠서 농사가 되는 것이란다 / 돌오줌 돌오줌, 듣다 듣다 별 오줌 같은 소리 다 들어본다고 했지만 / 어릴 적 옥수수밭이며 콩밭 오줌발 소리처럼 달착지근하게 들렸더랬다 / 뒷간에 오줌통을 놓고 재 뿌려서 똥거름 만들었던 아버지 생각이 났더랬다 / 집도 절도 없이 나간 딸 생각에 가슴께나 쓸어내렸던 / 아버지 어머니도 돌들이 오줌을 누고 웃어대서 깨가 쏟아진 거라며 / 깻잎 김치 밥숟가락에 얹듯 웃었더랬는데 / 괜시리 눈물이 자글자글 깨 쏟아지듯 나왔더랬는데

 

빚에 쫓겨 시골 빈집으로 이사 온 여동생 네는 돌투성이 땅에 이랑을 고르지도 못하고 깨 모종을 했다. 어찌된 일인지 깨는 대풍이었고 온 식구가 다 먹고도 남을 깻잎김치를 담갔다. 진짜 농사꾼은 돌이 오줌을 누워 깨가 잘되었다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농사지식으로 그 말은 사실이었다. 깨 농사는 땅바닥에 불이 붙을 정도로 가뭄이 들어야 깨알이 쏟아졌다. 다만 모종을 심고 뿌리가 활착하기까지 수분이 필요했다. 시골 노인네들은 밤낮의 기온차로 돌에 맺힌 이슬을 ‘돌오줌’이라고 불렀다. 가뭄 든 깨밭의 돌오줌이 바로 풍년을 일군 일등공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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