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

대빈창 2021. 12. 29. 07:30

 

책이름 :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

지은이 : 이문구

펴낸곳 : 바다출판사

 

명천 이문구(李文求, 1941 - 2003) 선생은 예순셋의 나이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3대 연작소설집 『관촌수필』, 『우리 동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를 진즉에 두세 번 잡았다. 아쉬움에 책장을 둘러보다 산문집에 눈이 갔다.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열린세상, 1994), 『줄반장 출신의 줄서기』(학고재, 2000)를 제치고, 꺼낸 든 책은 선생의 마지막 산문집이었다.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바다출판사, 2003)는 유고산문집으로 헌사대신 고인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출판사의 인사말이 실렸다. 선생은 3년 전부터 산문집을 내자는 출판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전 병원의 허락을 받고 외출을 나와 원고를 교정했다. 2000 - 2002년 여러 지면에 실렸던 글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했다.

1부 ‘지상의 마지막 불목하니’는 개인적 삶에 대한 회고 13편, 2부 ‘결혼식장에 간 동리선생’은 인연 있는 문단 사람들의 이야기 12편, 3부 ‘고개 들어 세상 보니’는 세태를 풍자적으로 비판한 글 12편, 4부 ‘꼭한’ 사내 ‘똑한’ 여인은 작가의 애정이 담긴 토속어에 대한 글 8편 등 45편이 실렸다. 유고집에 실리기 마련인 죽음을 예감한 어두운 글이나 투병의 괴로움을 호소한 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명천 선생의 관조가 특유의 문체로 산문 곳곳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1부의 「불목하니의 불타령」은 아궁이 불을 잘 때는 재주(?)를 가진 명천 선생은 농민단체 정기총회에서 점심으로 마련한 국밥 가마솥에 비에 젖은 장작으로 불이 붙지 않아 곤욕을 치르자, 선생은 세 아궁이를 순식간에 끊여내어 총회를 무사히 마치게 만든 공로자가 되었다. 어느 문인의 조문을 하려 두메산골에 가서 두부솥에 불만 때주다 돌아왔다. 환갑 잔칫집에서 밤새 서리를 맞으면 한뎃솥의 쇠머리를 고았다. 3부의 표제글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는 국조國鳥, 길조吉鳥라 부르며 귀하게 여기던 까치를 농작물에 해를 가한다는 이유로 ‘까치 소탕 100일 작전’ 등의 명목으로 까치 씨를 말리는 염량炎凉 세태를 비판했다.

2부 ‘결혼식장에 간 동리선생’에 실린 문인·문단이야기가 글의 정점이었다. 제자가 거간 선 낯모르는 이의 주례를 맡아 식장에 갔다 하객 노릇한 문협이사장 김동리, 문단의 호인 강민 시인, 데뷔를 미끼로 시인 지망생에게 잡지를 파는 발행인의 호구지책용 문예지, 문학평론가 김치수의 신춘문예 심사평, 『친일문학작품선집』(실천문학사, 1985)에 미당을 싣고, 스승이 죽자 풀어낸 회한, 양성우 시집 『첫마음』에 실은 발문, 핍박받는 한국 문인들의 복지, 1968년 『월간문학』 창간준비요원으로서의 추억, 북한 동포에게 보내는 문인들의 겨울내복, 문단의 대인大人 해산海山 한승원, 영화소설-원작소설-위조소설, 1년간 문인들이 보내 준 신간도서 저자 약력난에 실린 현행문학상 393종(누락된 상도 꽤 될 것이다)에 대한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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