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서쪽이 빛난다

대빈창 2022. 1. 26. 07:30

 

책이름 : 서쪽이 빛난다

지은이 : 이세기

펴낸곳 : 실천문학사

 

서쪽이 내게 말을 한다. 안이 어두워야 밖이 잘 보인다. 그것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의 가장 추운 말이었다. 서쪽이 내게 낮은 목소리로 들려준 말이다.(116쪽)

 

시인의 산문 「서쪽의 말」의 마지막 부분이다. 시집은 해설이나 발문이 없었다. 뒤표지에 류신(문학평론가)의 표사가 있을 뿐이다. 4부에 나뉘어 54시편이 실렸다. 서쪽이 들려 준 말을 시인은 적어 내려갔을 것이다. 「시인의 말」과 「시어 풀이」가 시집의 마무리를 맡았다.  ‘서해의 섬과 바다를 한국시의 영토로 편입’시켰다고 평가받는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었다.

시인은 1963년 옹진 덕적군도에서 태어났다. 1988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나는 그동안 시인의 첫 시집 『먹염바다』(실천문학사, 2005), 『언 손』(창비, 2010) , 그리고 산문집, 『흔들리는 생명의 땅 섬』(한겨레출판, 2015)을 잡았다. 시편들은 바다에서,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형상화했다. 서해의 작은 섬에 살고있는 나에게 시 속에 담긴 섬과 바다, 섬 주민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시인의 발걸음은 언제 강화에 머물렀을까. 강화도 읍내의 밥집 ‘아리랑’의 『새우두부젓국』(38 - 39쪽)에서 아버지의 입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평생 배를 타다 물고기처럼 두 눈을 뜨고 죽은 아버지를 떠올렸다. ‘기껏 하루 일과가 잔고기 몇 마리 낚았다며 / 물고기 씨가 말랐다는 늙은 어부의 말’ 「서포리 1」(62 - 63쪽)의 7연이다. 그렇다. 물고기 씨가 지독하게 말랐다. 민통선의 이웃섬 볼음도는 봄철에 한두 마리 맷방석만한 가오리가 뻘그물에 든 것이 고작이었다. 배를 탔던 섬 주민들은 그물이 터져라 끌어 올렸던 옛날을 떠올렸다. 그물을 찢는 꽃게가 귀찮아 퇴비장에 던져 거름으로 썼다. 지금은 꽃게는커녕 돌게도 씨가 말라 통발어업으로 연명했다. 너댓 명의 어부들은 몇 년에 한번 터지는 새우젓 잡이에 목을 매고 있었다.

시인은 말했다. “시는 자신이 발 딛고 선 땅에서 언어를 기른다. 그렇게 시는 자신의 육체를 갖는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 「언리 해변」(11쪽)의 전문이다.

 

희디흰 조개껍질은 서쪽에서 왔다  // 춥고 추운 것들은 바닷가에 남아 / 파도로 말없이 울고 있다 // 저녁별이 돋을 때까지  / 나도 빈 조개껍질도 이 한낮은 갈 곳이 없어  / 돌중게와 놀며 바닷가를 서성거리다 보면 // 떠밀려 온 것들은  / 저물녘 바닷가에서 시린 뼈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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