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인간과 말

대빈창 2022. 1. 24. 07:30

 

책이름 : 인간과 말

글쓴이 : 막스 피카르트

옮긴이 : 배수아

펴낸곳 : 봄날의책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1888-1964)는 의학을 전공하고 대학병원 보조의사로 사회에 나섰다. 하지만 기계화된 의학 산업에 회의를 느끼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톨릭에 귀의해 영성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글을 발표한 신학자·사상가였다. 『침묵의 세계』는 이 땅의 많은 문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나는 건축가 승효상의 책을 잡고, 막스 피카르트를 알게 되었다. ‘빈자의 미학’을 화두로 삼은 건축가는 독일의 이름 없는 철학자의 책을 평생 가장 중요한 참고문헌으로 삼았다.

『인간과 말』은 막스 피카르트가 죽기 10년 전 취리히에서 발간한 저서였다. 『침묵의 세계』가 ‘침묵’에 관한 성전이라면, 『인간과 말』은 ‘말’에 관한 성전이었다. 말과 언어 그리고 인간에 관한 시적인 명상록이었다. 그는 말을 중심으로 소리, 빛, 진리, 사물, 행위, 시간, 목소리의 관계를 탐구했다. 책은 21개 장章으로 구성되었고, ‘선험성’이라는 개념으로 시작되었다. 저자는 언어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인 모든 영역, 죽음까지 포함하여 ‘선험성’이라는 개념어를 적용했다.

'인간의 기본구조에 속하는 모든 요소는 앞서 주어진 것이다. 인간이 그것을 취하여 사용하기 이전인 태초부터 이미 인간을 위해 마련되어 있었다. 인간에게 앞서 주어진 것 중 하나는 바로 언어다.······. 이렇듯 언어는 인간에게 미리 주어져 있다. 인간이 말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언어는 인간 속에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간은 처음부터 말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16쪽)

막스 피카르트가 관찰한 ‘말’은 언어학과 관련이 없었다. 아니 철학이나 전문용어에도 기대지 않았다. 그는 고대어의 문장, 구약성서의 명사와 문장구조, 시인의 말을 응시하고 음미하며 언어의 심연에 닿았다. 첫 장 ‘언어의 선험성’은 끝을 맺으며,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의 시 「단장斷章, 62」를 인용했다.

 

불멸은 유한하며 유한한 것은 불멸한다.

살아 있는 사람은 타인의 죽음을 살며,

죽은 사람은 타인의 삶을 죽는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문장은 마치 사람이 아니라, 언어 자체가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시절 인간은 선험성이 언어와 대화하는 지점을 알고 있었고, 언어가 말하고 있을 때 언어를 급습했다. 이 문장에서 나오는 치유력은, 궁극적으로 모든 내용을 초월한다.”(31쪽) 막스 피카르트의 책 두 권을 연이어 잡았다. 나는 옮긴이 시인 최승자와, 소설가 배수아를 보며 일단 안심을 했다. 관념적·추상적 글의 이해도가 형편없는 내가 마지막 책장을 덮기까지 두 번역가에 대한 믿음이 작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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