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호미

대빈창 2022. 4. 15. 07:00

 

책이름 : 호미

지은이 : 박완서

그린이 : 호원숙

펴낸곳 : 열림원

 

『호미』(열림원, 2014)는 작가 박완서가 경기 구리 아차산기슭 ‘아치울 노란집’에서 80세로 생을 마무리하기까지 쓴 글들로 삶과 지혜를 담은 산문집이었다. 개정판은 작가의 맏딸 호원숙의 식물 일러스트 40점이 새로 실렸다. “어머니의 부재를 어쩌지 못해 그리움으로 그렸던 작은 그림들”은 작가가 생전 노란집 마당에 가꾼 1백 종이 넘는 채소와 꽃들이었다. 맏딸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치울 노란집’의 마당을 여전히 가꾸고 있었다.

1부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의 14편의 글은 헌집을 헐고 새집을 지으면서 걸치적거리는 목련을 베었다. 다음해 그루터기 위에서 새싹이 돋고 잎을 피웠다. 작가는 마당을 가꾸면서 손으로 잎을 훑어내었지만 목련은 줄기차게 새 잎을 피워냈다. 마침내 작가는 목련에게 항복했고, 이제 꽃까지 피워내는 나무와 대화를 하게 됐다.

단단한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상사화와 복수초, 말벌집을 제거하며 생명에 대한 미안함, 늦가을 잔볕에 꾄 무당벌레들, 1백가지 꽃이 순서대로 피는 작은 마당, 고개를 살짝 비튼 유려한 선의 호미, 편안한 친화감의 흙길 걷기, 인간의 탐욕으로 단풍들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진 고로쇠 나뭇잎, 가난보다 부정과 부도덕을 능멸했던 작가의 세대, 어려운 이를 돕는 구인救人 등.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완벽하게 정직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고, 그건 농사밖에 없을 것 같았다.”(54쪽)

2부 ‘그리운 침묵’의 17편은 오른 팔목 깁스로 한 달 간의 불편, 열흘간의 피정, 중국 황산黃山 관광에서 느낀 가마꾼과 휴머니즘의 배신, 딸 교육은 세상을 바꾸자는 비원, 전철에서 만난 서너 살 아이와 겪은 반지에 얽힌 아픈 기억, 작가의 고향에서 온 찐고구마, 진솔하다는 말의 의미, 방학을 맞은 손자들을 위해 양력설을 쇠신 상투 튼 할아버지, 폭설 속 공중에 뜬 순환도로 교통정체의 공포, 청계천 변천사 등. “좋은 상상력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한다.”(118쪽)

3부 ‘그가 나를 돌아보았네’의 4편은 생명존중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타고 나셨던 시어머니, 음식(비오는 날 메밀 칼싹두기, 계집아이 생일날 수수팥떡, 참게암게장, 강된장과 호박잎 쌈) 이야기, 작가의 소설 속 일제식민시대, 한국전쟁으로 한 달도 채 다니지 못한 서울대 50학번 작가의 명예박사 학위수여에 대한 감사글.

4부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작가의 주변 인물에 대한 짧은 평전이었다. 어머니의 딸에 대한 극렬한 신식 교육열, 작가의 고향마을 개성 박적골의 동네머슴 호랭이, 제도권에 기대어 혜택이나 편의를 누리지 않는 옹골찬 기개의 학자 이이화, 돌의 꿈을 캐내었던 조각가 이영학, 속기俗氣도 자기과시의 욕망을 찾아볼 수없는 강원 양구의 박수근 미술관, 특출한 미의식과 참대처럼 청청하고 의연한 풍모의 시인 김상옥, 늦은 나이에 등단한 어머니의 든든한 조력자 맏딸 호원숙, 아무하고도 비길 수 없는 이 시대의 큰 인품 이문구. “열 살에 그런 일을 겪은 이가 어떻게 당신처럼 하해와 같은 도량을 가진 인격으로 자랄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게 만약 문학의 힘이었다면 지금이라도 문학 앞에 무릎을 꿇고 싶습니다.”(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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