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지은이 : 정희진
펴낸곳 : 교양인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는 표지그림이 눈에 뜨였다. 1권은 중년의 백인 여성이 원탁에 앉아 연필로 글을 쓰고, 2권은 백인 소녀가 원탁에 엎드린 자세로 잉크로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어설픈 그림 지식은 얼핏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일어난 예술 운동 라파엘 전파를 떠올렸다. 1권 책날개의 화가는 샐리 로젠바움(Sally Rosenbaum)이었고, 2권은 그나마 화가의 이름도 없었다. 화가에 대한 자료는 없고, 이미지에 ‘책 읽는 여자’를 그린 그림이 다수였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는 63권의 책과 글을 쓰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3 - 4쪽 분량의 글이 3장에 나뉘어 실렸다. 1장 ‘몸에서 글이 나온다’는 정희진식 글쓰기 방법론이었다. 좋은 글쓰기란 통념과 상식, 기성의 것과 상투성에 머물지 않고 텍스트를 나만의 것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2장 ‘우리는 타인을 위해 산다’는 무엇인지 보여주는 글을 모았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자기 변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삶의 의미가 되어야 한다. 3장 ‘내게 여성은 고통이자 자원이다’는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글을 모았다. 여성에 대해 쓴다는 것은 여성, 여성의 경험, 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해 상상력이 없는 이 세계에 숨을 불어넣는 일이다.
|머리말| 「글이 나다」에서 저자는 두 글의 인용으로 시작했다. 첫 글은 소설가 정찬의 「슬픔의 노래」로 저자가 말하고 싶은 이 책의 주제, 특히 ‘글을 쓰는 자’에 대한 모든 관심을 요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글은 영국 근대 사상가 메리 울스턴그래프의 『여성의 권리 옹호』로 2백 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저자의 처지와 다르지 않음에 절망과 슬픔을 지나 ‘안도’했기 때문이었다. 첫 꼭지는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청춘의 감각, 조국의 사상』으로 윤동주가 1942년에 쓴 「참회록(懺悔錄)」의,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까
1연을 인용했다. 그리고 미당의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거울이 어설픈 흉내내기였다면 윤동주의 구리거울은 정확했다고 말했다. 참혹한 일제 시대를 건너 온 두 시인의 삶만큼 대조적이었다. 저자는 말했다. “글쓰기는 삶과 분리될 수 없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말하기’이고, 말하기는 곧 ‘사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평생에 걸쳐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다.
1장에서 내가 읽은 책은 7권이나 되었다. 2장은 단 1권이었다. 페미니즘을 다룬 3장에서 내가 읽은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여성주의’에 관한 나의 현실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였다. 마지막은 폴 윌리스의 『교육현장과 계급재생산』을 다룬 ‘백인 남성 노동자 계급’에 나오는 저자의 탁견을 소개한다.
“백인/남성/노동자는 계급적 타자인 자신의 위치를 사회 변화를 위한 분노로 승화하기보다 지배 계급 남성과 동일시하는 근거로 삼는다. 자신이 ‘비록’ 노동자이긴 하지만, 인종적으로는 백인이고 성별로는 남자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계급적 열등감을 이주민과 여성 노동자에 대한 배타성, 우월 의식으로 보상받고자 한다. 마르크스 이론의 결정적 실패 원인 하나는 성별과 인종 개념의 부재다. 남성은 여성혐오로 단결했지만, 노동자는 인종과 성별, 국적으로 분열되어 있다.”(233-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