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느낌의 0도
지은이 : 박혜영
펴낸곳 : 돌베개
표지 그림을 보고 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을 떠올렸다. 맑은 호수에 겨울 숲이 비치고 있었다. 호숫가의 눈이 녹아가는 겨울 끝자락이었다. 밝은 햇살을 받아 호수 수면이 거울처럼 빛났다. 소로가 오두막에서 혼자 월든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느낌의 0도』는 에코페미니스트·영문학자 박혜영(58)의 첫 저서였다. 낯이 익었다. 그렇다. 생태인문 격월간지 『녹색평론』의 편집자문위원이었다. 그녀는 서문 「느낌이 깨어나면 보이는 것들」에서 말했다. “부유한 선진국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서 지속 가능한 오래된 기술을 찾아야 한다. 과학이 아니라 문학에게 진실을 물어야 하고, 기술자가 아니라 작가의 눈으로 우주를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표제의 0도는 ‘무감각에서 깨어나 눈 뜨는 해빙의 온도’였다.
책은 생태사상가 여덟 명의 작품과 사상을 소개했다. 그들은 생태적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으로 현대문명의 파괴성을 파헤쳤다. 책장을 넘기면 윌리엄 블레이크, 로버트 프루스트, 알렉산더 포프, 게리 스나이더, D. H. 로렌스 등의 시가 숨어있는 보물처럼 나타났다. 부제는 ‘다른 날을 여는 아홉 개의 상상력’이다. 마지막 아홉 번째의 상상력은 독자의 몫이었다.
『침묵의 봄』의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년)은 자신의 서식처를 파괴하는 유일한 존재 인간의 등장으로 아름다운 지구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죽어 가는지를 사유했다. 『모모』의 미하엘 엔데(Michael Ende, 1929-1995년)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바꾸어버리는 자본주의 체제는 결국 이 지구를 문명이라는 이름의 고독한 사막으로 만들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E. F. 슈마허(E. F. Schumacher, 1911-1977년)는 빈곤 체제를 대량 생산과 물질적 팽창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가난은 작은 풍요로도 극복될 수 있고, 지금까지 인류가 축적한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삶은 기적이다』의 웬델 베리(Wendell Berry, 1934- )는 농사는 한 장소에 뿌리내리고 산다는 것의 인간적 책임과 자연에 순응해야 하는 인간적 한계를 가리켰고, 우리 삶에 풍요와 평화를 가져오는 가장 신성한 노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팔레스타인 민족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 1941-2008년)는 자기 땅에서 유배당해 자살테러 외에는 인간의 존엄함과 자기 존재를 입증할 길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을 노래했다. 좌파 지식인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년)는 전 작가 생활을 통해 이농, 이주, 이산, 감금, 분리, 격리가 난무하는 시대에 풀처럼 뿌리 뽑힌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작은 것들의 신』의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 1961- )는 말했다. "우리는 때때로 책에서 눈을 들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스위치를 켜서 불을 밝히고 냉방을 하고 목욕을 즐길 수 있도록 누군가가 먼 곳에서 어떤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reau, 1818-1862년)는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데 필요한 자유와 평화란 실은 작고 소박한 자립경제 위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명징하게 몸소 입증해보였다.
마지막은 내가 좋아하는 평화학·여성학자 정희진의 추천평이다. “이 책에는 오늘날 우리 삶의 많은 문제가 ‘해명’되어 있다. 강력한 치유의 책이다. 치유가 앎과 반성으로부터 시작된다면, 이 책은 절실하고 진실한 치유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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