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지은이 : 이원하
펴낸곳 : 문학동네
2018년 신춘문예의 신데렐라는 단연 한국일보 시 부문 당선인이었다. 신문지상의 문화면은 새로 탄생한 시인과 시로 도배질이 되었다. 당선작을 표제작과 첫 시로 삼은 데뷔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는 2020년 4월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귀가 얇은 나는 그때 득달같이 시집을 손에 넣고, 게으르게 이제 책갈피를 펼쳤다.
"거두절미하고 읽게 만드는 직진성의 시였다. 노래처럼 흐를 줄 아는 시였다. 특유의 리듬감으로 춤을 추게도 하는 시였다. 도통 눈치란 걸 볼 줄 모르는 천진 속의 시"였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당선된 시인은 평단, 출판계 그리고 詩를 좋아하는 독자들에 회자되며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문단은 “대체 이런 시인이 어디 숨어 있다 나타났냐?”고 술렁대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독보적 재능’의 시인의 삶은 문학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녀는 서울 연희미용고와 경기 용인 송담대 칼러리스트학과를 졸업했다. 미용실 스태프로 일했으나 1년 만에 그만두고 2년간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연기학원에 다니며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 뒷모습이 조금 나온 것이 마지막 출연작인 단역배우였다. 짝사랑하던 배우가 박후기 시인의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를 선물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처음으로 시를 진지하게 읽었다. 여행작가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산문보다 시를 쓰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고 시 아카데미로 옮겼다. 그리고 시를 쓰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갔다. 시집에 담긴 시집들은 모두 ‘시인’이 되겠다고 작심하고 제주에서 2년 동안 쓴 시들이었다. 시집에 실린 모든 시가 육지에 있는 단 한 사람 ‘그 분’을 그리며 썼다. 시집은 연서戀書로, 시편들 대부분이 경어체였다.
시집은 이례적으로 출간 한 달 여 만에 7쇄를 찍어냈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4시편이 실렸다. 소제목은 ‘새’, ‘싹’, ‘눈’, ‘물’로 한 음절 단어였다.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책에 글을 싣기를 원하다는 이 시대의 인기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해설 「자연에서 자유까지―웃는 사람 이원하」가 실렸다. 첫 시집을 내고 시인은 제주도를 떠나 육지로 돌아왔다.
시집에 이어 나온 산문집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달, 2020)의 첫 문장은 ‘혼자 살고 술은 약하다는 말은 사실 구조 요청 메시지였어요.’ 시인은 다른 곳으로 떠나야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시집의 발신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될 거라고 한다. 마지막은 시집에서 가장 짧은 시 「초록과 풀잎 같은 것들은 항상 곁에 있는데 보이질 않더라고요 그날부터였을 거예요」(40쪽)의 전문이다.
아직 덜 폈어요
오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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