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철학 VS 철학
지은이 : 강신주
펴낸곳 : 오월의봄
개정판 1쇄 펴낸날 2016년 8월 10일. 〈개정 완전판〉이 나오고, 책을 잡기까지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책등 폭이 앞표지 폭의 반 이상이 될 정도로 부피가 상당했다. 거기다 이 땅 사람들이라면 이내 주눅부터 드는 철학서이지 않은가. 책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가트에 집어넣다 빼기를 반복하다 막상 주문한 책은 선물했다.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고, 군립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책씻이하기까지 온전히 열하루가 걸렸다.
본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1500쪽 양장본의 뒤에 실린 부록부터 살폈다. 인명사전 / 개념어사전 / 더 읽을 책들&참고문헌 / 철학사 연표. 철학자·인문학자·유학자·물리학자·선교사·정신분석학자·불교사상가·수학자·심리학자·영화감독·시인·소설가·문학평론가·생물학자·혁명가·사회학자·기호학자·언어학자·논리학자·신학자·종교학자 등 255명의 인물과 '생각과 존재의 불일치, 혹은 간극을 극복하려는 인문학적 정신의 결정체‘(1444쪽)라고 설명한 철학(哲學, philosophy)을 비롯한 개념 412개를 읽으며 꼬박 이틀이 지나갔다.
차례는 프롤로그와 「처음, 철학이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Sokrates, BC 469 - BC 399)와 공자」, 서양철학편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플라톤(Plato, BC 428?-BC 348?) VS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BC 322)」에서 「정치는 어디로 가는가? 슈미트(Carl Schamitt, 1888-1985) VS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까지 33편. 동양철학편 「사랑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공자(孔子, BC 320?- BC 250) VS 묵자(墨子, BC 407?- BC 390?)」에서 「한국 철학은 가능한가? 박종홍(朴鍾鴻 , 1903-1976) VS 박동환(朴東煥, 1936- )」까지 33편. 「지금 철학이란 무엇인가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와 바디우(Alain Badiou, 1937- )」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었다.
본문은 사물의 본질·행복·사유재산·사랑·언어·윤리·깨달음 등 66개의 주제를 내세워 서로 대립적인 시각의 동서양 철학자 132명을 등장시켰다. 글은 먼저 각 쟁점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상이한 입장의 철학자들의 견해를 밝혔다. 철학자들의 사유를 보여주는 원문을 두 개 이상 직접 인용했다. 마지막은 고찰(Remarks)로 중요 철학사적 쟁점과 정보, 비교철학적 전망들을 소개했다. 초판본과 개정판의 |머리말|이 두 개가 실렸다. 초판본은 3,500매였고, 개정판은 여기에 3,000매을 더했다. 글을 마치자 철학자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수 없을 정도로 어깨가 탈골되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도 있는데 지레 겁을 먹고 책읽기를 뒤로 미루었다는 사실이 못내 씁쓸했다.
철학자 강신주(姜信珠, 1967 - )는 말했다 “철학사에는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관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과거의 철학자와 현재의 철학자 사이에 치열하고 정직하게 펼쳐지는 진실한 대화만이 존재”할 뿐이다. 저자의 이력이 특이했다. 공대 출신의 그가 석사·박사 과정을 철학으로 마친 데는 1980년대라는 시대상황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가 20년간의 철학 공부를 매듭지으면서 새로운 공부의 출발점으로 동서양 철학을 ‘우리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가능성을 탐색한 것이 『철학 VS 철학』이었다.
한국 철학사에서 저자가 손꼽는 인물 3인은 원효, 신채호, 김수영이었다. 의상의 화엄종이라는 국가불교에 대한 대안으로 직접 저잣거리에서 민중에게 자비행을 실천했던 원효 대사와 일제강점기 고난의 시대 모든 지성인들이 사유의 사대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렸을 때 아나키스트 신채호는 자신의 사상을 집요하게 반성하며 끝없이 성장시켰다. 수치스러운 어리석음에 매몰되었던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적 자유가 없는 곳은 예술적 자유가 없는 곳이다.”라고 일갈했던 시인 김수영이었다.
철학의 대중화에 힘쓰는 저자를 너무 늦게 알았다. 군립도서관의 강신주 저작을 모두 섭렵해야겠다. 우선 『김수영을 위하여』를 대출도서 목록에 올렸다. 마지막은 1925년 1월 2일 동아일보에 실린 단재의 「낭객의 신년만필」의 일부분이다.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의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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