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
지은이 : 최성현
펴낸곳 : 불광출판사
인가를 내주지 않는 스승과 인가를 받지 않는 제자. 새벽 2시에 일어나 40킬로미터(100리 거리)를 바람이 부는 날도 비가 오는 날도 눈이 내리는 날도 14년간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오가며 공부를 마친 스님. 암환자의 가래침을 삼키고 그를 위해 기도를 마친 천리교 교회장. 나이 마흔아홉에서 예순 넷까지 30여년을 정 하나로 54.60미터의 바위 굴길을 뚫은 선사. 하루에 9시간 동안 3천 번 가까이 1년에 100만 번 오체투지를 한 단 한 사람의 일본인. 길을 떠나 커다란 소나무 아래서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선채로 입망立亡한 선사.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게 네거리에 30년이나 짚신을 걸어 논 스님, 죽기 20분전 친구에게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쓰고 좌탈坐脫한 선사. 왕실 출신으로 미모 때문에 출가를 거절당하자 부젓가락으로 얼굴을 지진 비구니. 변소 안에서 싹을 틔운 대나무가 천장에 닿자 장대 끝에 매단 촛불로 지붕에 구멍을 뚫다 지붕을 다 태운 스님.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는 반농반X의 삶을 살아가는 최성현이 20여 년간 모은 선사들의 일화 모음집이었다. 그는 강원 홍천에서 낮에 농사짓고 밤에 책을 쓰고 옮기는 농부로 자연농법을 가르치는 〈지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농부철학자의 마니아로서 저자가 짓고 옮긴 책 가운데 내가 잡은 열여섯 번째 책이었다. 차례는 곽암 선사의 〈십우도十牛圖〉를 응용해서 6장에 나뉘어 301가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일본 선승禪僧의 일화를 중심으로 책을 엮은 것은, 저자가 일본어 번역가로 20년 동안 책을 옮기면서 많은 일화를 만났기 때문이다.
첫 꼭지 「성장을 방해하는 것」에 실린 2편의 이야기는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로 삶의 도처에 숨어있는 고수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일본 황벽종의 본사 만푸쿠지萬福寺의 일주문 현판 글씨는 〈제일의第一義〉였다. 코센 쇼톤高泉性潡은 중국인으로 일본의 황벽종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스님은 아이들 키만 한 큰 붓으로 여든 네 번 만에 기진맥진한 끝에 현판 글씨를 완성했다.
중국음식점의 자장이나 짬뽕에서 빠질 수 없는 ‘닥꽝(단무지)’는 다쿠앙 소호 선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최고 권력자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선사를 찾아왔다가 난생처음 먹어 본 음식이었다. 산해진미만 먹다가 소박하고 담백한 단무지에서 새로운 맛을 느꼈을 것이다. 스님이 처음 만든 찬에, 권력자는 선사의 이름을 붙였다.
표제글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 」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선승 잇큐(一休)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일화였다. 앞날을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기며 그가 말했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이것을 열어봐라. 조금 어렵다고 열어봐서는 안 된다. 정말 힘들 때 그때 열어봐라.”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사찰에 큰 문제가 생겼다. 승려들은 마침내 잇큐의 편지를 열었다. 편지에는 딱 한 줄이 쓰여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든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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