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이반 일리치 문명을 넘어선 사상
지은이 : 야마모토 테츠지
옮긴이 : 이적문
펴낸곳 : 호메로스
출판사·글쓴이·옮긴이 모두 낯설었다. 판권면을 보고 알았다. 호메로스는 리즈앤북의 인문브랜드였다. 하지만 〈리즈앤북〉이나 〈호메로스〉나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책은 전적으로 ‘이반 일리치’라는 이름이 가진 힘에 의해 내 손에 들려졌다. ‘급진적 사상가’, ‘위대한 철학자’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년)를 처음 접한 것은 정기 구독하는 『녹색평론』이었다. 나는 그의 이름에서 레프 톨스토이(1828-1910년)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떠올렸다. 소설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Ivan Ilitch였다.
글쓴이 야마모토 테츠지(山本哲士, 1948- )는 일본의 정치사회학자였다. 책은 그의 사상가 논집 네 권 중의 하나였다. 『미쉘 푸코의 사고 체계』, 『피에리 부르디외의 세계』,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사상』. 그는 20대 청년시절 멕시코로 건너가 이반 일리치가 이끄는 CIPOC(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에서 강의를 듣고 함께 토론했다. 4년 간 멕시코에 머무르며 라틴아메리카 문화와 일리치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읽은 책은 10여 년 전 박홍규가 옮긴 『학교 없는 사회』(생각의나무, 2009)가 유일했다. 리뷰의 마지막 구절이다.
- 이반 일리히는 단적으로 갈파한다. 가장 교활한 것이 학교라고. ‘고속도로망은 자동차의 수요만은 만들어내지만, 학교는 스펙트럼의 오른쪽 끝에 몰려 있는 현대 제도 전체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낸다.(125쪽)’고. 단지 학교는 자본의 이익을 올리기 위한 노동자를 육성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특히 교육은 없고 입시만 날뛰는 이 땅에서는. -
내가 이반 일리치를 제대로 읽었는지 모르겠다. 일리치 사상의 기본 성격은 “발전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산업 시스템은 그것이 목적으로 삼았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교육을 받을수록 어리석어지고, 치료할수록 병이 들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동시간이 더 걸리게 되는, 소위 ‘역생산성’이다.”(12쪽)
이반 일리치는 사제 서품을 받은 신부였다. 당시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교구 활동을 하면서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의 차이를 깨달았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문화에 무지한 채 이 지역에서 포교하는 것은 해악”이라고 밝혔다. 일리치는 멕시코 쿠에르나바카를 거점으로 가톨릭 전도사들을 교육했다. 교육을 통헤 눈을 뜬 선교사들은 라틴아메리카로 가지 않고 귀국해버렸다. 바티칸과 북미 가톨릭교회는 분노했고 그를 바티칸으로 소환시켰다. 가톨릭의 엘리트였던 일리치는 파문을 당했다. 하지만 그의 신앙심은 변하지 않았다. 교회 제도를 부정했을 뿐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신앙을 평생 유지했다.
야마모토 테츠지는 말했다. “산업사회는 더 없이 미숙한 세계이자 빈약한 세계다. 정치도 경제도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본질적인 규칙성은 일리치에 의해 충분히 밝혀졌다. 이제 그것을 상식으로 삼아야 한다.”(562쪽) 나의 이반 일리치의 공부는 이제 시작되었다. 다행히 도서출판 〈사월의책〉에서 ‘이반 일리치 전집’을 펴내고 있었다. 현재까지 『전문가들의 사회』, 『그림자 노동』, 『깨달음의 혁명』,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H2O와 망각의 강』, 『젠더』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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