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강제이주열차

대빈창 2022. 6. 24. 07:00

 

책이름 : 강제이주열차

지은이 : 이동순

펴낸곳 : 창비

 

1937. 8. 21. 구소련 공산당중앙위 전 서기장 스탈린은 원동遠東 연해주 일대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소련군은 사전에 고려인 지도자 2,800여명을 체포해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총살시켰다. 17만 명의 고려인들은 1937. 9. 1.부터 이듬해 3월까지 가축수송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3차에 걸친 강제이주는 124개 차량이 동원되었고, 이동 기간 42일 동안 2만㎞를 달렸다.고려인들은 목적지도 알 수 없이 화장실도 없고 마실 물 한 모금 없는 화물열차에 실렸다. 그들이 내린 허허벌판의 중앙아시아는 구소련이 해체되고, 지금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지역이었다.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사막이거나 식량 한 톨 건질 수 없었던 동토였다. 집도, 가구도, 농기구도, 돈 한 푼 없었다. 고려인들은 땅굴을 파고 거센 눈보라와 살을 에이는 추위를 이겨냈다. 이주 초기 허약한 노인과 어린이 1만 여명이 풍토병과 추위로 죽었다.

시인 이동순(李東洵, 1950년- )은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력 50년의 원로시인이었다. 내가 잡은 책은 편저자로서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白石詩全集』이 유일했다. 시인은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었다. 『강제이주열차』는 시인의 열여덟 번째 시집이었다. 시집이 출간된 2019년은 고려인 강제이주 82년째 되는 해였다.

1부 ‘강제이주열차’의 연해주 고려인들을 그린 52편, 2부 ‘슬픈 틈새’의 사할린 한인들을 그린 7편, 3부 ‘두 개의 별’의 2018년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시인의 경험을 그린 15편이 실렸다. 해설은 반병률(역사학자)의 「산 자와 스러진 자, 모두의 이름을 위하여」였다. 내가 고려인 강제이주의 슬픈 역사를 알게 된 책은 역사학자 강만길의 『회상의 열차를 타고』(한길사, 1999)였다. 역사기행으로 부제가 ‘고려인 강제이주 그 통한의 역사를 가다’였다. 사할린 한인의 고난에 찬 삶은 소설가 이규정의 현장취재장편소설 세 권의 『사할린』(산지니, 2017)을 통해 접했다.

‘두 개의 별’은 고려인 민족지도자 계봉우 애국지사와 홍범도 대한독립군 총대장을 가리켰다. 시편들은 작가 조명희와 화가 신순남, 록 가수 빅토르 최와 열차사고로 사망한 유아와 소녀 등 나라 잃은 힘없는 민족의 장삼이사들의 애달픈 삶, 카자흐탄 알마티와 크릴오르다의 고려인 동포의 애틋한 정을 담았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 「고려인 무덤」(8-9쪽)의 1·2연이다.

 

살아선 세상에 갇혔고 / 죽어서는 쇠 울타리에 갇혔네 / 얼굴과 이름 새긴 돌비 하나 누가 세웠으나 / 더 큰 풀 돋아나 다시 묻혔네 // 발돋움으로 더듬어야 겨우 찾는 곳 / 날아와 울어줄 새 한마리 보이지 않는 곳 / 머나먼 동쪽 끝에서 쫓겨와 / 평생을 물풀처럼 떠돌다 마감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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