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천국은 있다

대빈창 2022. 8. 23. 07:00

 

책이름 : 천국은 있다

지은이 : 허연

펴낸곳 : 아침달

 

시인 허연(許然, 1966년 - )은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불온한 검은 피』(세계사, 1995) / 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 2008) / 내가 원하는 천사(문학과지성사, 2012) / 오십 미터(문학과지성사, 2016)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문학과지성사, 2020). 나는 시인의 첫 시집을 재간행본(민음사, 2014)으로 손에 잡았을 뿐이다.

시선집 『천국은 있다』(아침달, 2021)는 허연의 시를 아껴 온 다섯 명의 동료 문인 - 시인 오은, 유계영, 유희경, 송승언, 문학평론가 오연경이 가려 뽑은 대표작 - 각 시집에서 12편씩, 시인의 최근작 12편까지 모두 72시편을 담았다. 문학평론가 오연경은 해설 「내게 신이었던 날들은 시가 되고 시는 슬픔에 슬픔을 보태는 노래가 되고」에서 “우리를 사로잡고 무릎 꿇게 했던 매혹의 날들, 온 존재를 뒤흔들었던 지독한 고통과 환희의 날들, 그러나 시간의 압력에 눌려 서랍 속에 처박힌 날들, 밥벌이와 일상을 위해 망각과 교환해 버린 날들, 그렇게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으나 흘러간 세월이 되어버린 날들”(128-129쪽)이라고 시와의 인연을 말했다.

시인 유희경은 시인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자신의 시적 편력에 영향을 준 시인에 대해 이야기한 발문 「무개화차 같은 시에 부처」에서 시인의 시를 ‘견딤’으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그 견딤은 시종일관 아슬하다. 아슬하게 생애를 이끌고 간다. 나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나 역시 견디고 있음을 깨닫는다.”(157쪽) 발문을 쓴 시인 책장의 허연의 시집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목차는 시인의 근작에서 출발하여 시집의 출간 역순으로 실었다. 독자가 허연 시의 기원을 찾는 여정으로 꾸며졌다고 한다. 세 번째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의 「천국은 없다」에서 ‘사랑이 한때의 재능’이라고 말했던 시인은 근작에서 ‘계산처럼 맑고 함수처럼 평등’한 「천국은 있다」고 했다. 마지막은 「내가 원하는 천사」(83-85쪽)의 6-11연이다.

 

본드 같은 걸로 붙여놓았을 날개가 /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 낭패를 당한 천사. / 허우적거리다 / 진흙탕에 처박히는 천사. // 진흙에 범벅되는 하얀 인조 깃털 / 그 난처한 아름다움. // 아니면 / 야간 비행 실수로 / 낡은 고가도로 교각 끝에 / 불시착한 천사 // 가까스로 매달린 채 / 엉덩이를 내 보이며 / 날개를 추스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 아니면 / 비둘기 똥 가득한 / 중세의 첨탑 위에서 /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 측은하게 지상을 내려다보는 / 그 망연자실. // 내가 원하는 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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