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구경꾼 VS 주체

대빈창 2022. 8. 24. 07:00

 

책이름 : 구경꾼 VS 주체

지은이 : 강신주

펴낸곳 : 오월의봄

 

초판 1쇄 - 2020. 9. 25. 1343쪽의 양장본은 묵직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기까지 꼬박 8일이 걸렸다. 낮에 100쪽, 밤에 100쪽 온전히 독서에 매달렸다. 출간된 〈강신주의 역사철학 정치철학 강의〉 시리즈 1・3권이 새로 문을 연 〈지혜의 숲〉도서관에 있었다. 새 도서관에서 대여한 첫 책이었다. 1권 『철학 VS 실천』은 앞서 누군가의 손을 탔다. 나는 3권부터 잡을 수밖에 없었다. 시리즈는 역사철학의 경우 1871년 파리코뮌과 1894년 갑오농민전쟁에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까지. 정치철학의 경우 마르크스, 벤야민, 기 보드르, 랑시에르, 제만을 중심으로 19세기 중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다루었다.

『구경꾼 VS 주체』의 부제는 '1960년대 학생운동과 기 드보르의 테제'였다. 책은 정치철학 4장, 역사철학 4장, 4개의 BRIDGE로 구성되었다. 정치철학 4개의 장은 68년 프랑스 파리 학생운동을 이끈 전략가 기 드보르(Guy-Ernest Debord, 1931-1994년)의 『스펙터클의 사회』에 담긴 전체 9개 장의 221개 테제를 분석하고 해설했다. 『자본론』이 출간된 지 100년째 되던 해 1967. 11. 14. 프랑스 파리에서 『스펙터클의 사회』가 출판되었다. 책은 프랑스 68혁명의 정신과 이념을 대변하고 파리코뮌의 정신을 계승했다. ‘스펙터클’은 ‘볼거리’라는 뜻으로 민중들의 직접적인 행동과 참여를 가로막는 기능을 수행한다.

68혁명의 지도부 ‘상황주의 인터내셔널(Internationale Situationniste, IS)’에서 ‘상황’은 관조된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주체적으로 개입하려는 실천적 현실을, ‘인터내셔널’은 근본적인 민주주의 조직이었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네 개의 인터내셔널이 정당코뮌주의였다면, 기 드보르는 평의회코뮌주의(Communisme de conseils)를 되살려냈다. 평의회코뮌주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로서 마르크스가 말한 인간사회이면서 파리코뮌에서 실현된 코뮌사회였다.

역사철학 1장은 스탈린 시절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1906-1975년)의 〈교향곡 7번〉은 러시아 혁명정신에 대한 레퀴엠이었다. 1917년 페트로그라드 2월 혁명과 10월 쿠데타는 레닌(1870-1924년)과 트로츠키(1879-1940년)의 볼셰비키는 정당코뮌주의로 변질되는 과정이었다. 이는 스탈린의 국가코뮌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노동계급 정부가 노동계급을 배신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배신당하고 능욕당한 노동계급에게 바치는 엘레지였다.

2장은 1964년 미국의 학생운동과 저항운동의 다양한 단면을 그리면서 학생운동의 지도자 마리오 사비오(Mario Savio, 1942-1996년)와 민중가수 존 바에즈(Joan Chandos Baez, 1941년- )를 다루었다. 미국에서 처음 대규모로 학생운동이 발발한 버클리 대학의 스푸라홀을 점거한 집회의 지도자는 ‘자유연설운동’을 이끄는 철학과 3학년생 사비오였다. 그는 “학생은 상품이 아니라 인간 존재”라고 외쳤다. 존 바에즈는 1960년대 내내 흑인 인권운동, 반전운동, 학생운동과 함께 했다.

나머지 역사철학 2개의 장은 한국의 분단과 독재 역사를 다루었다. ‘분단의 계보학과 4월 학생운동’은 1947년 10월 대구항쟁, 1948년 제주 4․3항쟁, 한국전쟁과 4․19혁명을 다루었다. ‘딴따라로 전락한 시인과 시인이 되어버린 가수’는 시인 서정주와 가수 김민기였다. 시대는 박정희의 5월 쿠데타와 1987년 6월 항쟁까지의 역사였다. 서정주는 「마쓰이 오장 송가」 등 친일시를 썼다. 1949년 독재자 이승만의 자서전 『이승만 박사전』을 집필했다. 1966년 베트남전 파병을 독려하고, 학생시위를 조롱하는 시를 썼다. 1986년 전두환의 쉰여섯번째 생일날 찬양시를 썼다. 미당은 2000. 12. 24. 살만큼 살고 이 세상을 떠났다. 민중가수 김민기는 동학농민혁명의 길을 순례하고, 공장노동자・농부의 삶을 살아가며 마침내 인문주의자로 성장했다.

4개의 ‘BRIDGE’에서 절반은 기 드보르가 복원시킨 평의회코뮌주의를 다루었다. 소수가 지배하는 계급사회가 아닌 인간 모두가 주인되는 사회를 가리키는 평의회코뮌주의의 계보는 칼 마르크스의 인간사회와 1871년 파리코뮌전사, 1919년 독일 스파르타쿠스동맹의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 1921년의 크론시타트소비에트, 1934년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광부 투쟁 그리고 체 게바라로 이어졌다. 나머지 2개는 사르트르가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으로 불렀던 코만단테 코무니스타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 1928-1967년)이었다. 코무니스타(communism)는 자유로운 공동체, 코만단테(comandante)는 혁명군사령관을 뜻했다.

1956. 11. 25. 쿠바혁명군 82명이 정원 25명의 그란마호에 타고 라스콜로라도스 해안에 상륙했다. 12. 5. 바티스타 정부군의 습격으로 15명만 남은 채 모두 전사했다. 15명은 시에라마에스트라산맥에 들어가 게릴라 활동을 시작했다. 게릴라 활동 2년 만에 700만 쿠바 민중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1958. 12. 28. 게바라는 400명의 게릴라로 중무장한 10배의 바티스타 정규군을 궤멸하고 산타클라라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쿠바혁명의 결정적 승리였다. 1958. 12. 31. 친미군사독재자 바티스타는 도미니카로 도망쳤다. 게바라는 쿠바혁명 후 아프리카 콩고, 라틴아메리카 볼리비아의 게릴라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이끌었다. 1967. 10. 8. 17명의 게릴라 부대원은 3개조로 나누어 볼리비아의 험준한 추로협곡의 탈출을 시도했다. 게바라는 동지 2명과 볼리비아 정부군에 생포되었다. 10. 9. 라이게라 작은 마을의 학교 교실에 감금되었다가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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