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더불어 숲 2
지은이 : 신영복
펴낸곳 : 중앙 M&B
『더불어 숲 2』는 지금은 사라진 강화읍내의 고려궁지로 향하는 언덕길의 작은 서점 〈백합사〉에서 구입했다. 23년 전의 일이 어제처럼 또렷했다. 책방의 아가씨는 새하얀 백합처럼 청초한 얼굴의 미인이었다. 나는 책을 주문하고 작은 서점에 발걸음을 자주 했다. 케냐의 킬로만자로 산기슭에서 마사이족 어린이들과 함께한 이미지를 표지사진으로 삼은 2권은 18개국 22곳에 선생의 발걸음이 머물렀다. 엽서글 22편은 그림과 시를 함께 엮었다.
미국 아메리카 드림 /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 페루 쿠스코 / 페루 마추픽추 / 브라질 아마존 / 러시아 모스크바 / 스웨덴 사회복지 / 영국 산업혁명 / 프랑스 파리 / 스페인 몬드라곤생산자협동조합 / 오스트리아 빈 / 이탈리아 베네치아 / 그리스 아테네 / 터키 이스탄불 실크로드 / 터키 코니아 사마춤 / 인도 캘커타 / 인도 부다가야 보리수 / 네팔 히말라야 / 베트남 하노이 / 일본 가나자와 / 중국 양자강 / 중국 태산 일출
선생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보내는 첫 번째 엽서 「우리는 꿈속에서도 이것은 꿈이라는 자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에서 ‘미국의 꿈은 바깥에 있었습니다.’(26쪽) 아메리카 드림은 가난한 제3세계의 민중의 꿈속에서나 존재했다. 마지막 엽서 「어두운 밤을 지키는 사람들이 새로운 태양을 띄워 올립니다」는 오악지수五岳之首의 신산神山 태산泰山, 공자의 고향 곡부曲阜, 중국 문명의 요람 황하黃河를 돌아보며 “오늘의 곤경이 비록 우리들이 그 동안 이룩해 놓은 크고 작은 달성達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고 하더라도, 다만 통절한 깨달음 하나만이라도 세울 수 있기”(193쪽)를 바랬다.
선생이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20일 만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8년 만에, 첫 해외여행에 오른 날은 공교롭게도 28년 전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내려지던 날이었다. 선생의 세계 여행은 자본주의의 오만과 무지 그리고 반인간주의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강자의 지배논리는 정치·경제에 국한되는 것만이 아니라 역사와 유적의 미학까지 재구성했다. 사람들의 심성마저 강자의 논리와 이익에 따라 왜곡되었다. 선생은 맺는 글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에서 “어느 곳의 어떤 사람들이든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존중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196쪽)라고 말했다.
해짧은 늦가을의 어둠은 불시에 들이닥쳤다. 칠흑 같은 버스터미널 광장에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녀가 막차의 창가에서 슬픈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우산도 없이 그녀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서점에서 다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선창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가족이 섬에 피서를 왔을 것이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녀의 등에 간난아이가 업혔고, 어린아이가 치마에 매달렸다. 저쪽에서 남편으로 보이는 사내가 큰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나는 서글펐다. 그녀가 머뭇거리며 뒤돌아섰다.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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