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더불어 숲

대빈창 2022. 7. 11. 07:08

 

책이름 : 더불어 숲

지은이 : 신영복

편내곳 : 중앙 M&B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프랑스의 작가·철학자 장 그르니에(Jean Grenier, 1898-1971년)의 산문집 『섬』의 추천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년)의 「섬에 부쳐서」의 마지막 부분이다. 그렇다. 아마! 그 시절, 내가 책을 손에 들고 느꼈던 심정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책술에 인천 부평 한겨레문고의 심벌마크가 파란잉크로, 1998. -. -. 구입 날짜가 흐릿하게 붉은 잉크 고무인으로 찍혔다.

무슨 일로 나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 인천 부평에 발걸음을 했다. 그리고 습관대로 대형서점에 들렀다. 신간서적 코너에서 책을 발견했을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중앙 M&B〉에서 펴낸 두 권짜리 책이었다. 1권은 1998. 7. 열흘 만에 3쇄를 찍었다. 2권은 1998. 8. 4쇄 판이었고, 책술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 강화읍내의 작은 서점에 책을 주문했을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길목에서 띄우는 신영복의 해외엽서’라는 부제가 붙었다. 『나무야 나무야』가 국내엽서라면 『더불어 숲』은 해외엽서였다. 20개국 24곳의 유적지와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세상을 향한 정직하고 따뜻한 통찰이 가슴을 적셨다. 엽서글 24편은 그림과 사진을 함께 엮었다. 나는 24년 만에 책을 다시 펼쳤다.

 

스페인 우엘바 항구 / 스페인 로스 카이도스 계곡 / 그리스 마라톤 평원 / 그리스 아테네 디오니소스 극장 / 터키 이스탄불 소피아 성당·블루 모스크 / 인도 갠지스강 / 인도 델리 간디 기념관 / 네팔 카트만두 / 베트남 호치민 / 일본 아라쿠사 /중국 만리장성 / 러시아 상트 페테부르크 / 폴란드 아우슈비츠 /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 영국 런던 타워브리지 / 프랑스 파리 콩고드 광장 /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 / 페루 나스카 / 멕시코 국립멕시코 대학 / 미국의 정체성

 

故 신영복(1941-2016년) 선생은 첫 번째 엽서의 「콜럼버스는 왜 서쪽으로 떠났는가」에서 “처음으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조국 그리고 20년을 갇혀 있어야 했던 조국을 벗어나는 감회”(15쪽)에 젖었다. 선생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1968년(27살)부터 1988년(47살)까지 영어(囹圄)의 몸이었다. 스페인 우엘바 항구의 산타마리아호를 보며 선생은 ‘신대륙 발견發見’이라는 가당찮은 명칭을 폐기시키고 ‘도착到着’이라고 명명했다. 마지막 꼭지 「보이지 않는 힘, 보이지 않는 철학」은 미국의 정체성을 물으면서 이렇게 끝맺었다.(197쪽)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에는 한국이 없기 때문이지요”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선생이 프랑스 혁명(1789년)의 현장 바스티유 광장에서 콩고드 광장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길어 올린 성찰을 가슴에 담았다.

 

‘나는 진보와 성장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는 많은 사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한때 공감했던 감동은 마치 바다를 찾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물길을 틔워나가리라고 생각합니다.’(130-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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