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김수영을 위하여

대빈창 2022. 7. 15. 07:00

 

책이름 : 김수영을 위하여

지은이 : 강신주

펴낸곳 : 천년의상상

 

출판사가 낯설었다. 판권란을 펼쳤다. 2012년 2월에 등록된 신생출판사였다. 책은 그해 4월에 초판1쇄를 찍었다. 출판사는 제법 묵직한 첫 책을 펴내면서 책표지에 글쓴이와 편집인을 나란히 표기했다. 편집자의 이름을 표지에 올린 것은 저자의 강력한 뜻이었다고 한다. 그는 말했다. “편집자가 출판사와 지은이 사이에서 완충 구실을 함으로써 독자영합이 아닌 인문정신이 알아 있는 책을 출간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편집자 김서연은 『김수영 전집』(민음사, 1981)을 지은이에게 구해 주었다. 속표지에 쓴 글은 “사포처럼 살갗을 도려내는 일상의 적들과 싸우느라······ 얼마나 아팠을까, 그 사람”이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인문저자로 꼽히는 철학자 강신주(姜信珠,  1967년- )는 홍대근처 ‘상상마당’에서 열 번의  김수영에 대한 인문학 강의를 열었다. 편집자 김서연은 매주 강의 때마다 강의를 그대로 녹취하고 그것을 말끔하게 정리하여 넘겨주었다.

책은 프롤로그 「김수영을 아는가, 자유를 아는가」, 김수영의 인문정신을 다룬 10개의 장章, 에필로그 「굿바이! 김수영」으로 구성되었다. 12개 제사題詞는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에픽테토스의 『담화록』,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니체의 『유고』,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 벤사이드의 『저항』,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푸코의 『주체와 타자의 통치』, 랑시에르의 『정치에 관한 열 가지 테제』, 이성복의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에서 인용했다.

『김수영을 위하여』는 철학자 강신주가 현대 문학의 거목 김수영(金洙暎, 1921-1968년)에게 바치는 조사弔辭이며 묘지명墓誌銘이었다. 시인은 1968년(47세)의 나이로 불우하게 세상을 떠났다. 찰학자는 김수영을 가리켜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이라고 단언했다. 김수영은 이 땅에서 민족주의 시인이나 참여 시인으로 편협하게 읽혀졌다. 철학자에게 시인은 혁명가였고, 진정한 인문정신의 소유자였다. 김수영은 자유를 울리는 인문정신을 온 몸으로 살아 낸 우리의 첫 시인이자 마지막 시인이었다. 김수영이 죽으면서 이 땅의 인문정신은 1960년대에서 단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김수영을 위대한 시인으로 만든 것은 거제도포로수용소였다. 2년 동안 반공포로 신분이었던 김수영은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철학자는 말했다. “이제는 김수영이 4·19 혁명의 낭만적 자유정신에 취했던 시인으로 오해하지 말자. 그의 자유정신은 상상 속에서 길러진 것이 아니라, 거제도포로수용소라는 피와 땀과 굴욕의 현장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추구하는 자유정신은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이다. 모방하는 삶이나 억압된 삶은 자기만의 삶이 아닌 실패한 삶이기에 여기에 저항하는 것이다.

‘권력은 모든 인간이 자신이 명령하는 대로 살기를 바란다. 종교는 신의 가르침이 절대적인 삶의 방식이라며 모든 인간이 수용하길 원한다. 나아가 자본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단독성을 망각하고 자신이 자본에 종속되는 상품에 불과하다고 인정하기를 원한다.’(203쪽) 사람들은 자본 신神, 종교 신神, 권력 신神에 기대어 살아가지만, 김수영은 자신에게 기대었다. 그리고 시를 썼다. 김수영은 사회주의자도 모더니스트도 아니었다. 그는 자유를 바랐다. 자유에는 이념이 없다. 오직 사람뿐이다.

1994년 늦가을, 위기의 순간에 철학자는 김수영을 만났다. 문학을 좋아하는 선배가 시선집 『거대한 뿌리』를 선물했다. 글쓴이는 「달나라의 장난」을 읽다가 '생각해보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가'라는 구절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이후 힘들 때마다 그는 김수영과 그의 시를 떠올렸다. 마지막은 언론, 사상, 양심의 자유마저 반공이데올로기에 목 졸렸던 암흑의 시대에 독재 권력을 폭로한 시 「김일성만세」(1960. 10. 6)의 전문이다.

 

‘김일성만세’ /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趙芝薰)이란 / 시인이 우겨 대니 // 나는 잠이 올 수 밖에 // ‘김일성만세’ /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張勉)이란 // 관리가 우겨 대니 //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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