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윤중호 시전집 詩

대빈창 2022. 8. 2. 07:00

 

책이름 : 윤중호 시전집 詩

지은이 : 윤중호

펴낸곳 : 솔

 

내가 시인을 알게 된 것은 생태사상가 김종철(1947-2020년) 선생의 글을 통해서였다. 시인의 유고시집 『고향 길』에 실린 발문 「우리가 모두 돌아가야 할 길」을 정기구독하는 『녹색평론』이 펴낸 단행본의 어느 글에서 눈동냥을 했다. 나는 시인의 산문집 『느리게 사는 사람들』(문학동네, 2000)을 2009년에 잡았다. 그리고 시집을 찾았다. 2010년에 찾은 시인의 『고향 길』(문학과지성사, 2005)은 유고 시집이었다. 시인은 마흔아홉(1956-2004년)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온라인 서적에 살아있는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금강에서』(문학과지성사, 1993)를 잡았다. 첫 시집 『본동에 내리는 비』(문학과지성사, 1988)와 세 번째 시집『靑山을 부른다』(실천문학사, 1998)는 품절로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온라인 중고서적을 기웃거렸으나 나의 성심은 거기까지였다. 「본동일기」 연작시편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 / 나는 비탈에 산다. / 천 원짜리 미술 준비를 못한 옆집 주희가 / 울면서 학교를 가는 동네지만, 비탈에서도 / ······ / 나는 비탈에 산다. / 부자 동네의 육십 몇 층짜리 빌딩보다도 / 더 높은 곳에 사신다. / 종일 물 받기에 바쁘고 연탄값도 / 아래 동네보다 10원씩 더 비싸지만, 박 씨 아저씨는 / 10원씩 더 비싼 연탄값 때문에 / 술값이라도 생긴다. / 새까맣게 종일 일해야 / 삼천 원 벌이지만, 그게 어디냐고 / 높은 데 사시는 분답게 매사에 열심이시다. / ······

 

「본동일기·열」(36-37쪽)의 일부분이다. 가난으로 미술준비를 못해 울면서 학교 가는 주희에게서 나의 눈물방울 맺힌 그 시절을 떠올렸을까. 산동네 연탄배달부 박 씨 아저씨한테서 수색 달동네에 살던 연탄공장 노동자 이모부가 겹쳐 보였을까. 마침내 시인의 18주기를 맞아 시전집이 출간되었다.  네 권 시집을 출간 순서대로 한데 모았다. 유고시 「가을」은 『고향 길』 뒷표지에 실린 시였다. 미발표시 「신탄진 홍경자 뎐」까지 247편의 시가 온전히 담겼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임우기의 「비非 근대인의 시론-『녹색평론』의 故 김종철 선생님께』이었다. 나는 해설을 읽고 그동안의 의문이 풀렸다. 故 윤중호 시인은 1984년 계간지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인의 ‘민중시’ 경향은 〈창비시선〉과 어울렸다. 네 권의 시집에서 세 권이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윤중호 시전집’을 엮은 문학평론가는 그 시절 《문학과지성사》의 편집위원으로 시인에게 첫 시집 출간을 권유했다. 표제 글씨는 유고시집 『고향 길』을 여는 첫 시「詩」의 육필원고를 빌어왔다. 마지막은 『녹색평론』 창간호에 실렸던 「한강 5」(162쪽)의 전문이다.

 

아침저녁으로 너를 만난다 / 김포가도를 씽씽 / 달리는 척하다가, 아예 / 꿈쩍도 하지 않는 출근길 / 꾸벅꾸벅 졸면서 / 너를 만난다, 때로는 / 흑백사진처럼 역광으로 비치고, 때로는 / 행주대교 난간에 걸린 / 행주처럼 지저분한, 그러나, 너무도, 선정적인 / 저녁해를 품는, 그러나 / 독한 땅덩어리로 흘러 / 독한 물고기도 등이 굽어 흐르는 / 한강 / 위로 등이 굽은 내가 병신처럼 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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