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철학 VS 실천

대빈창 2022. 9. 21. 07:00

 

책이름 : 철학 VS 실천

지은이 : 강신주

펴낸곳 : 오월의봄

 

〈강신주의 역사철학 정치철학 강의 〉 시리즈 1권은 〈지혜의 숲〉 도서관에 있었다. 도서 대여기간 3주에 맞춰 뭍에 발걸음을 하는 나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시리즈 3권을 반납하고, 시리즈 1권을 대여했다. 철학자 강신주가 나의 독서목록에 포함된 것은 근래였다. 초판 1쇄 - 2020. 6. 10. 출간된 지 2년이 지나서 책은 나의 눈에 띄었다. 5권으로 기획된 시리즈는 카를 마르크스, 발터 벤야민, 기 드보르, 자크 랑시에르, 임레 레만의 철학 텍스트를 바탕으로 당대의 역사와 철학을 아울렀다.

『철학 VS 실천』의 부제는 ‘19세기 찬란했던 승리와 마르크스의 테제’였다. 책은 정치철학 4장, 역사철학 4장, 4개의 BRIDGE로 구성되었다. 정치철학 4개의 장은 온전하게 마르크스의 몫이었다. BC 3000년경 최초로 계급사회가 형성되었고, 21세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생산수단을 빼앗아 독점한 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압・착취・수탈해 온 억압체제였다. 마르크스는 억압과 착취에 신음하는 노동계급의 혁명에 실천적 이론과 전망을 마련해주었던 인류 최고의 지성이었다.

저자는 1845년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년)가 27세에 완성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을 그의 철학의 완성이자 정점으로 보았다. 마르크스는 첫 번째 테제에서 관조가 아닌 실천과 관련된 ‘대상적對象的 활동’과 소수의 지배계급이 생산수단을 독점하는 사회가 아닌 인간 전체가 공유하는 ‘인간사회’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마지막 열한 번 째 테제는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였다.

1871. 3. 18.에서 5. 18.까지의 파리코뮌은 더 이상 소수가 다수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회가 아니었다. 다수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회였다. 영국 런던의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을 『프랑스 내전』(1871년)으로 기록했다. 1871년 프랑스 파리가 정치수단, 폭력수단, 생산수단까지 모두 민주적으로 공유하는 일체의 억압과 지배가 사라진 사회였다면 우리에게 1894. 6. 10.에서 10. 11.까지 전라도 59개 군현에서 이어졌던 집강소執綱所가 있었다. 오지영(吳知泳, 1868-1950년)은 『동학사東學史』(1940년 간행)에 집강소의 열두개 개혁 강령을 기록했다. 1894. 6. 11. 전주화약全州和約으로 동학군은 전라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했다. 조선왕조의 인구는 1000만 명으로 노비의 비율이 30-40%로 300만 명의 노비가 봉건왕조를 떠받쳤다. 집강소는 곧바로 노비의 신분제를 폐지했다.

역사철학 4개의 장은 파리코뮌과 시인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4-1891년), 제2차 갑오농민전쟁 우금치 전투와 시인 신동엽(申東曄, 1930-1969년)을 담았다. 70여일의 짧은 파리코뮌이었지만 열일곱 살의 랭보는 파리코뮌의 자유정신과 전사들의 불굴의 기상을 가장 사실적으로 노래했다. 시인이 코뮌정신에서 찾은 시는 ‘객관적 詩’로 ‘견자見者의 미학’을 확립했다. 젊은 시인은 동학농민혁명군의 집강소가 설치되었던 민중자치정권 4개월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금강」이 게재된 『신동엽 전집』을 판매금지 시켰다. 시인이 동학농민군에서 찾은 시인정신은 ‘전경인全耕人의 미학’(시인정신론詩人精神論)이었다.

4개의 'BRIDGE'는 피지배자들의 삶을 옥죄는 현실적 억압상태에 맞서기보다 피안을 꿈꾸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제거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혁명력〉을 소개했다. 1793년부터 1805년까지 12년간 프랑스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된 혁명력은 인간이 살아가는 차안의 세계가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계라는 것을 긍정했다. 〈인터내셔널 찬가〉는 코뮌 전사로 코뮌의회 대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철도노동자 출신 외젠포티에(1816-1887년)의 시에, 1888년 섬유노동자 출신 드 제이테(1848-1932년)가 곡을 붙였다. 인터내셔널 찬가는 1871년 파리코뮌, 1917년 러시아혁명, 1918년 독일혁명, 1935년 스페인내전, 1968년 68혁명 때 억압받는 자들이 체제에 맞서 싸우면서 결의를 다질 때 항상 불렀던 노래였다.

소비도시 파리는 생필품이 차단되면 아사의 위협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파리코뮌은 바리게이트 안에 머물면서 수세적 방어를 펼쳤다. 동학농민군의 집강소가 설치된 전라도는 조선 최대의 곡창지대로 경제적 자립도가 높았다. 제2차 갑오농민전쟁은 한양으로 진격하는 동학군의 공세적 전투였다. 1980년대는 사회과학 전성기로, 당시 최고의 스테디셀러는 동녘의 『철학에세이』였다. 그 시절 ‘디아마트Diamat'라는 용어는 ’변증법dialectic'의 앞의 세 음절 ‘디아dia'와 ’유물론materialism'의 앞의 세음절 ‘마트mat'를 합쳐서 만든 말이었다.

80년대 나의 학창시절 '변증법적 유물론'은 불변의 진리로 역사를 포함한 모든 것을 해석하는 준거점이었다. 저자의 주장은 ‘마르크스 바로 읽기’였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 말은 엥겔스, 레닌, 플레하노프,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의 용어일 뿐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아니 우리가 배웠던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니었다. 다만 1980년대 우리는 엥겔스-레닌주의자였을 뿐이었다. 저자는 마르크스-엥겔스에서 하이픈을 떼어버렸다. 마지막은 1969. 4. 7. 마흔의 나이로 죽은 시인 신동엽의 유언과도 같은 詩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821-823쪽)의 전문이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네가 본 건, 먹구름 / 그걸 하늘로 알고 / 일생을 살아갔다. // 네가 본 것, 지붕 덮은 / 쇠항아리, / 그걸 하늘로 알고 / 일생을 살아갔다. // 닦아라, 사람들아 / 네 마음속 구름 / 찢어라, 사람들아, /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 아침 저녁 /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 티 없이 맑은 영원永遠의 하늘 / 볼 수 있는 사람은 / 외경畏敬을 / 알리라 // 아침 저녁 /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 티 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 마실 수 있는 사람은 // 연민憐憫을 / 알리라 / 차마 삼가서 / 발걸음도 조심 / 마음 아모리며. // 서럽게 / 아 엄숙한 세상을 / 서럽게 / 눈물 흘려 // 살아가리라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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