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묵상黙想
지은이 : 승효상
펴낸곳 : 돌베개
오래된.것들은.다.아름답다(컬처그라퍼, 2012) / 건축, 사유의 기호(돌베개, 2004) / 빈자의 미학(느린걸음, 개정판 2016) /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돌베개, 2016)
그동안 내가 잡은 건축가 승효상의 책들이다. 『묵상黙想』은 욕심 사납게 출간되자마자 손에 넣었으나 3년이 지나 손에 들었다. 건축가는 2014년부터 건축・예술・사회과학・문화의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1년 과정 아카데미 〈동숭학당〉을 이끌었다. 매년 해외답사를 떠났는데 2018년 여름 기행의 주제는 ‘공간’으로 영성으로 충만한 집, 수도원 순례였다. 〈동학同學〉 기행팀은 25명으로 화가, 소설가, 목수, 사진작가, 디자이너, 언론인, 의사, 변호사 등 다양한 부류의 직업인이었다. 수도원 순례의 이동하는 버스에서 건축가는 말했다. “세상의 경계 밖으로 떠나는 것이 그 모든 소유와 욕망에서 자유 하는 길이었을 겁니다. 베네딕토가 수비아코의 절벽을 찾고, 귀족과 명망가가 험준한 계곡과 거친 광야를 찾은 까닭입니다.”
수도원 순례를 끝내고 건축가는 글을 썼다. 수도원을 통해 영성과 건축에 대한 물음을 던진 『묵상』은 수도원과 건축, 여행 그리고 건축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설켰다. 책은 건축가가 수도원과 묘역을 순례하며 사색한 건축여행 에세이였다. 수비아코 베네딕토 수도원을 시작으로 14일간의 여정은 파리 시내의 추방당한 순교자 기념관에서 끝났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프랑스 파리에 걸친 2,500㎞의 여정이었다. 건축가의 사색은 이전 발걸음이 닿았던 그리스, 아일랜드, 티베트를 떠올렸다.
1000년 가까운 세월동안 한 번도 문을 연 적이 없다가 단 한번, 2005년 개봉한 영화 〈위대한 침묵〉으로 내부를 공개한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 출입문은 안에서 열수 없고, 음식물을 공급하는 작은 배식구로 겨울에는 한번, 여름에는 두 번 간단한 음식물을 공급하는 봉쇄수도원 체르토사 델 갈루초, 지회支會 수도회가 300여개에 달하고 대학까지 설립했던 중세 최대의 수도원이었으나 지금은 폐허로 남은 클뤼니 수도원, 르 코르뷔지에가 죽기 전 홀로 8년동안 기거했던 네 평 크기의 통나무 오두막 카바농까지 30여 개 도시와 50여 곳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포스터・스케치・그림 등 200여 점이 넘는 흑백 도판은 독자의 눈을 맑게 했다.
건축가는 수도원 순례의 백미로 라 투레트 수도원과 르 토르네 수도원을 꼽았다. 20세기 최고의 건축가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였다. 그의 사후 50년이 지난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코르뷔지에의 작품 17개를 인류의 최고 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1953년 코르뷔지에는 알랭 쿠튀리에 신부로부터 라 투레트 수도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도미니크 수도회 알랭 쿠튀리에(Alain Couturier, 1897-1954) 신부는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신부는 건축가에게 수도원 설계를 부탁하며 ‘조용하며 많은 사람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프로방스의 르 토르네 수도원에 흐르는 정신을 참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프로방스 깊은 산골의 르 토르네 수도원은 건축에 재능이 뛰어난 한 수도사에 의해 1179년에 착공하여 1200년에 완공되었다. 지금은 일부가 허물어진 폐허로 남아 박물관으로 운영되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폐허의 수도원에 감동받아 전속사진가 뤼시엥 에르베(1910-2007)가 찍은 사진을 모아 『진실의 건축』이란 이름으로 책을 내고, 서문을 직접 썼다. 수도원의 회랑에 들어서면 중정으로 향하는 아치형 창문들 사이로 프로방스의 빛이 쏟아졌다. 이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방문객에게 선사했다.
희대의 명작 롱샹 성당(샤펠 노트르담 뒤 오 드 롱샹)도 쿠튀리에 신부가 르 코르뷔지에를 설득해 설계를 맡긴 수도원이었다. 신부는 당시 프랑스 가톨릭계의 미술과 건축에 관한 권위를 인정받아 프로젝트을 위임받았다. 신부 쿠튀리에와 건축가 코르뷔지에,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는 현대건축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1950년 설계에 들어갔고, 착공한 지 2년 만인 1955년 6월 25일 세기의 롱샹 성당이 완공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 건축의 배경에는 종교적 사유가 있었다. 건축가는 1991년 여름, 라 투레트 수도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빛과 암흑을 담아낸 건축에 충격을 받았다. 코르뷔지에는 르 토르네 수도원과 마주치면서 자신을 비웠다. 승효상의 영성을 담은 건축물들을 낙동강 주변에 모여 있었다.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대통령 묘역, 15평의 작은 건물 경산시의 하양교회, 낙동강가 언덕 위 순교자 신석복을 기리는 명례성지, 경북 군위 부계 수목원의 사유원 등. 건축가가 명명한 ‘영성의 지도’의 길에 서 있는 나를 꿈꾸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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