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시인의 집

대빈창 2022. 9. 30. 07:00

 

책이름 : 시인의 집

지은이 : 전영애

펴낸곳 : 문학동네

 

시인・독문학자 전영애(1951- )는 『시인의 집』을 펴내기까지 1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글쓰기가 오래 걸렸다기보다 저자의 망설임으로 책이 늦게 나왔다. 그는 말했다. 책이 상품으로 된 시대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고. 『POET'S HOUSE』는 평생을 독일문학을 연구하며 책을 번역하고 한국어와 독일어로 시를 쓴 저자가 13인 시인의 발자취와 거처를 찾았다. “언제나 오라는 이도 없는 곳에 쓸쓸하게 가닿았고, 보내는 이도 없는 곳을 무거운 짐을 끌고 헐떡이며, 그러나 어김없이 서럽게 떠났다.”(154쪽)

 

게오르그 클라크(Georg Trakl, 1887-1924) / 파울 첼란(Paul Celan, 1920-1970) / 잉에보르크 바흐만(Ingeborg Bachamann, 1926-1973) /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 라이너 쿤체(Reiner Kunze, 1933- ) / 라이너 마리아 릴케(Riner Maria Rilke, 1975-1926) /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1-1856) / 베르톨드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 / 볼프 비어만(Wolf Biermann, 1936- ) / 고트프리트 벤(Gottfried Benn, 1886-1956) / 프리드리히 횔덜린(Friedrich Hölderlin, 1770-1843) /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er, 1759-1805) /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Goethe, 1749-1832)

 

트라클은 사회 적응을 못했다. 학교 유급・퇴학, 약물중독자, 제1차 세계대전 징집되어 야전병 위생병, 부상병 고통에 괴로움을 못 견뎌 자살했다. 두 편의 희곡 습작과 이백 편 남짓의 얇은 시집 한 권을 남겼다. 첼란은 동유럽의 부코비나 태생의 유대인 시인이었다. 부모는 나치에 학살당하고, 시인은 강제수용소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의 모국어는 ‘살인자의 언어’ 독일어였다. 가혹한 운명에 시달리던 시인은 1970년 프랑스 파리 센강에 투신해 삶을 마쳤다. 바하만은 수용소에서 파리로 향하던 첼란을 빈에서 만났다. 스물일곱・스물둘이었던 그들의 짧은 만남. 첼란이 자살한 몇 년 뒤 바하만은 로마의 집에서 화재로 죽었다. 떨리는 손은 담뱃불조차 끌 수 없었다.

카프카의 삶은 평생 프라하 구시가 시청 주변을 벗어나지 않았다. 마흔한 살 이른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었다. 카프카 글의 불가해한 힘은 눈 아프도록 응시하고 꿰뚫어본 삶에 대한 치열함으로 세계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쿤체는 냉전시대 동독에서 시의 본령을 지키는 서정시로 혹독한 핍박을 받았다. 릴케는 평생 집 없이 떠돌아다녔다. 독일문학사는 릴케의 『말테의 수기』가 발표된 1910년을 '산문 혁명의 해'로 불렀다. 소설을 탈고한 뒤 십여 년간 글을 쓰지 못했다. 릴케의 마지막 안식처는 알프스 산록의 르노계곡 바람 많은 바위산의 작은 교회 구석이었다.

하이네는 프랑스 혁명후의 반동・복고 체제를 비판하며 독일 참여문학의 선구가 되었다. 1831년 스물세 살의 시인은 파리로 떠나 죽을 때까지 살았다. 척수결핵으로 고통스런 말년을 보냈던 하이네는 몽마르트 묘원에 묻혔다. 브레히트는 58세로 죽으며 오십여 편의 완성 시곡과 이천삼백 편 이상의 시를 남겼다. 1933년 나치 집권 전 덴마크로 탈주, 스웨덴, 핀란드, 소련, 미국에서 십오 년의 망명생활을 거쳐 1948년 동베를린으로 귀환했다. 비어만은 함부르크에 태어났고, 17살에 동독을 택했다. 정치참여 가수시인으로 체제비판적인 시와 노래로 당국과 마찰이 빈번했다. 1976년 서독 공연 중에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그의 저항정신은 서독도 예외일 수 없었다.

벤은 목사 가정에서 출생했고, 피부비뇨기과의사였다. 의사는 1912년 아홉 편의 시를 담은 『시체공시소 외外』 팸플릿 시집으로 독일 시사의 한 획을 그었다. 횔덜린은 가정교사를 지내다 불행한 사랑으로 쫓겨났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프랑스 남부 보르도까지 갔다. 보르도에서 독일까지 걸어왔을 때 그는 광인이었다. 작은 방 ‘횔덜린 탑’에서 홀로 36년을 살았다. 쉴러는 괴테와 쌍벽을 이루는 독일 국민 문인이었다. 쉴러가 태어난 마바하는 네카강이 거의 한 바퀴를 휘도는 작은 마을이었다. 쉴러 언덕에 20세기 독문학의 최고 장서량을 자랑하는 쉴러국립박물관・독일문학문서실이 세워졌다.

괴테는 후진성에 갇혀있던 독일문학을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1775년 11월 스물여섯 살의 괴테는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바이마르에 왔다가, 1832년 여든두 살로 죽을 때까지 머물렀다. 시인은 기나긴 생애를 매일 다섯시 삼십분부터 오후 한시까지 글을 쓰고, 이후에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그의 『파우스트』는 시인의 생애에서 육십여년 동안 집필되었다. 저자는 말했다. “그 스무 해 가까운 세월은 무엇이었을까. 괴테라는 한 거장의 세계를 대충 조감이라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넣은 세월이었다.”(411쪽) 저자는 2011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독일 바이마르괴테학회에서 시상하는 〈괴테금메달〉을 수상했다. 마지막은 저자와 인연이 각별한 라이너 쿤체의 「한잔 재스민차에의 초대」(166쪽)의 전문이다.

 

들어오셔요, 벗어놓으셔요 당신의

슬픔을. 여기서는

침묵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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