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지은이 : 윤희상
펴낸곳 : 문학동네
절판된 중견시인의 첫 시집을 재출간하는 《문학동네》의 복간시집 시리즈 ‘문학동네포에지’ 네 번째가 쏟아졌다. 4차분 10권의 시집에서 유일하게 내 손에 들어온 시집이었다. 나는 시인의 첫 시집이 복간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예나 지금이나 詩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평이한 시어 속에 담겨진 잔잔하게 가슴에 스며드는 무언가가 시집을 찾게 만들었다.
『소를 웃긴 꽃』(문학동네, 2007) /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문학동네, 2014) /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문학동네, 재출간본 2021) / 『머물고 싶다 아니, 사라지고 싶다』(강, 2021)
내가 지금까지 잡은 또는 잡을 시집이다. 그동안 세 권의 시집을 손에 펼쳤고, 한 권이 책장에 자리 잡았다. 시리즈는 파스텔톤 표지에 해설, 추천사 없이 |시인의 말|이 두 개, 부 구분 없이 72시편이 실렸다. 개정판 시인의 말에서 첫 시집을 그대로 펴내면서 꽃 이름 ‘사루비아’를 ‘샐비어’로 고쳤다고 했다. 「길에서, 아들에게」(45쪽)의 2연이었다.
시인은 1989년 『세계의 문학』에 「무거운 새의 발자국」외 2편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2015년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의혹이 드러났다. 소설가가 1990년 『한국문학』 3-4월호 합본호에 「무거운 새의 발자국」을, 1992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멀리, 끝없는 길 위에」를 발표했다. 두 단편은 시인의 시 제목과 똑같았다. 「멀리, 끝없는 길 위에」는 시인이 1987년 무크지 『현실시각』 2집에 발표한 시였다. 두 시는 시인의 첫 시집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재출간본)의 첫 번째와 일곱 번째 시였다.
나는 시인의 두세 번째 시집에서 몇 편의 오월 광주 시편을 만났다. 시인은 고교 3년 때 오월 광주와 마주쳤다. 아! 첫 시집도 예외일 수 없었다. 「나를 긴장시키기 위하여」(31쪽)와 「198052703시15분」(44쪽). 아래는 표제시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56쪽)의 전문이다.
강화도에 갔다. 내가면사무소에 들러 고인돌이 있는 / 곳을 물어보았더니, 가르쳐주었다. 선산에 / 갈 때처럼 고인돌이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 달려갔다. 참깨밭 한편에 놓여 있는 고인돌 / 옆에 돗자리를 깔았다. 과일을 먹었다. / 똥을 싸고, 오줌을 쌌다. 다섯 살 된 딸은 / 고인돌 위에서 춤을 추었다. 우리는 고인돌과 함께 / 놀았다. 나뭇잎 사이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시편을 읽으며 어느 고인돌일까 궁금했다. 160여기의 고인돌이 강화도에 산재했다. 그중 70여기 고인돌만 전북 고창과 전남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묶여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강화도 아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인돌은 사적 제137호로 지정된 하점 부근리 강화江華지석묘支石墓였다. 잘생긴 고인돌은 국사교과서에 실렸다. 다섯 살 된 딸이 고인돌 위에서 춤을 추었다는 행을 읽고 나는 다른 고인돌을 떠올렸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된 내가면 오상리 고인돌군이었다. 고인돌들은 상석이 바둑판처럼 편편해서 농부들이 들밥을 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린아이가 춤추는 무대로 적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