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백제금동대향로
지은이 : 서정록
펴낸곳 : 학고재
나는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가 발견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스크랩했다. 90년대 말, 거금(?)을 아끼지 않고 높이 28㎝의 ‘축소형縮小型 복각품復刻品’을 구입했다. 2001년 8월 초판1쇄의 책을 손에 넣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는 다시 책을 펴들었다. 복각품을 구매하면서 딸려 온 도록이 아직 책장에 꽂혀있었다. 책을 열자 헌사獻詞가 “고(故)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영전에 이 책을 바칩니다.”였다. 서정록(徐廷綠, 1955 - )은 한살림모임 창립 멤버였다. 저자는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동학사상에 심취한 재야연구가였다.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 12. 12. 저녁, 부여 나성羅城 밖 능산리 고분군 서쪽 골짜기의 유적 공방터의 수조水槽 구덩이에서 1,40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향로는 전체 높이 61.8㎝, 무게 11.85㎏, 몸체 지름 19㎝로 구리와 주석을 85대15 비율로 합금한 주조품이었다. 향로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맨 위의 상상의 새 봉황과 뚜껑의 산악도, 그리고 연꽃이 장식된 노신爐身과 이를 물고 있는 용받침이다.
봉황은 보주 위에 날개를 펼쳤고, 턱 아래에 여의주를 품었다. 뚜껑의 산악도는 삼산형 산들을 배경으로 기마수렵인물,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 호랑이, 사자, 원숭이, 멧돼지, 코끼리, 낙타 등 많은 동물과 폭포, 나무, 귀면상, 불꽃문양 등을 표현했다. 봉우리가 70여개, 인물상 10여명, 40여 마리의 동물과 6종의 식물이 조각되었다. 노신의 연꽃은 8장의 연꽃잎이 3단으로 배치되어 수상생태계를 표현했다. 연꽃 위와 사이에 물고기, 새, 날개달린 상상의 물고기 등 20여 마리의 동물과 택견하는 인물, 달아나는 동물에 올라타는 인물을 표현했다. 받침대는 발가락이 다섯 개(五足)의 용이 연꽃 줄기를 입에 물고 비상하면서 용틀임하고 있었다. 용의 몸통 사이에 파도, 연꽃무늬가 조각됐다.
책은 미술사, 문화사, 고고학, 동서교류사를 망라하는 백제대향로의 문화사적 탐구이며 한국 고대문화사에 대한 연구서였다. ‘백제의 정수’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로로 손꼽히는 〈백제금동대향로〉를 재야연구가는 성왕 때 사비천도를 준비하면서 국가적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았다. 제작 연대는 520년대 후반에서 530년대 전반기로, 천도와 함께 사비에 세워진 신궁神宮에 봉안한 제기祭器였다. 유물이 발견된 능산리 유적지를 기존 학계는 백제 왕실의 원찰願刹로 보았다. 저자는 백제 왕실의 건방지신을 위시한 조상신들과 각종 신령을 모신 신궁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신궁의 제기로 사용되다가 백제가 멸망할 때 황급한 와중에서 향로를 칠기에 넣어 공방터 속의 수조통 속에 깊이 매장했다. 저자는 1400년 만에 기적적으로 발견된 백제향로를 통해 이 땅 고대인들의 샤머니즘의 정신세계를 조명했다. 샤머니즘은 전통적으로 인간과 자연 세계 동식물들 사이의 순환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마지막은 시인 최승범(1931∼)의 「시방세계 다함없는 향훈이거라」의 전문이다.
1천300여 년 / 겹겹 어둠 인고의 세월을 / 아 용하게도 끝내 / 견디어냈구나 / 부스스 / 어둠 털고 현신하던 날 / 사비성 날빛도 / 눈이 부셨다 // 부소산 밝은 등성마루 / 자운 피어오르고 / 백강 굼니는 용들 / 현란한 별빛이었다 / 둥둥실 / 날앉은 봉황의 / 저 영걸스런 / 눈빛이여 // 한 동산 날짐승 길짐승뿐 아냐 / 저승 이승 귀신도 사람도 / 연꽃으로 벙근 가슴 / 하냥 산그러졌구나 / 아 이제 / 옷깃 여며 합장하노니 / 시방세계 펑퍼지는 / 향훈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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