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대빈창 2022. 10. 19. 07:00

 

책이름 :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지은이 : 이승하

펴낸곳 : 문학사상

 

『공포와 전율의 나날』(시인동네, 개정판 2015) / 『우리들의 유토피아』(새숲, 재출간본 2020) / 『감시와 처벌의 나날』(실천문학사, 2016) / 『뼈아픈 별을 찾아서』(달아실, 개정판 2020) / 『나무 앞에서의 기도』(케이엠(Km), 2018 ) / 『예수・폭력』(달아실, 2020)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문학사상, 개정판 2018)

 

내가 지금까지 잡은 시인 이승하(李昇夏, 1960 - )의 시집들이다. 시인을 알게 된 것이 고작 2-3년에 불과하지만 어느 시인보다 그의 시집을 집중적으로 잡았다.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는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문학사상, 2005)의 개정판이었다. 나는 왜 시인의 시편에 끌렸을까. 문학평론가 홍용희는 해설 「순백한 고통의 언어」를 이렇게 시작했다.

 

“이승하의 시 세계는 고통의 기록물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삶이란 고통을 견디는 과정이다.”

 

시인이 마주치는 고통은 실로 다양했다. 1부의 34편의 시는 요양원 / 기도원 / 응급실 / 구급차 / 중환자실 / 영안실 / 화장터의 육체적 고통에서 자살테러 / 야반도주 / 학교폭력 / 이상가족 상봉 / 비전향 장기수 / 일본군 위안부 / 세월호 참사의 사회・역사적 고통까지 아울렀다. 2부 29편의 시는 선재도 / 새만금 / 간월도 / 황지 / 시흥갯벌, 멸종을 눈 앞에 둔 크낙새까지 개발이란 미명아래 저지르는 자연 파괴와 유나바머unabomber, 모스크바 시체안치소, 수단 내전 등 전쟁・테러의 고통을 다루었다.

시적 대상은 아토피성 피부염의 아들을 비롯한 가족・친지와 예술가들(김사인, 정호승, 최성각, 임영조, 김강태, 잔 예뷰테른)까지. 그리고 신문지상에 이슈화된 인물들을 직접 등장시켰다. 이는 시집을 펴는 독자들이 고통의 실상을 체험・환기・공유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대부분의 시편이 삶의 고통을 기록했지만 평화・안식에 대한 몇 편의 詩가 실렸다.

 

저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 렌즈에 담았으니 / 세계여 이 사진만큼만 / 사랑스럽기를, 평화롭기를

 

「세 번의 만남」(50-53쪽)의 한 연이다. 여기서 사진은 노상에서 담배를 파는 아버지가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이미지였다. 엄마를 잃은 아기는 하루 종일 아버지와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사진사는 Walter Studer이었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면서 표제작인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11쪽)의 전문이다.

 

오죽했으면 죽음을 원했으랴? / 네 피고름 흘러내린 자리에서 / 꽃들 연이어 피어난다 / 네 가족 피눈물 흘러내린 자리에서 / 꽃들 진한 향기를 퍼뜨린다 // 조금만 더 아프면 오늘이 간단 말인가 / 조금만 더 참으면 내일이 온단 말인가 / 그 자리에서 네가 아픔 참고 있었기에 / 산 것들 저렇듯 낱낱이 / 전저리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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