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대빈창 2022. 10. 20. 07:00

 

책이름 :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지은이 : 강신주

펴낸곳 : 동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은 홍익대 근처 《상상마당》에서 10주씩 두 번, 20주 동안 이루어졌던 강의 〈현대 철학의 속앓이〉가 토대가 되었다. 총 21편의 현대시를, 21명의 현대 철학자를 통해 철학의 주요 개념과 철학자들이 고민했던 문제를 바라보았다. 21명의 시인들은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이고, 21명의 철학자에서 박동환만이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각 장은 시 한편을 앞에 내세웠고, 철학자의 이론을 설명한 후, 그 시선으로 시를 해석했다.

박노해(朴勞解, 1957- )의 「인다라의 구슬」은 울림과 전체라는 화엄의 논리를 노래했고, 네그리(Antorio Negri, 193 - )의 ‘다중’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대중을 가리켰다. 기형도(奇亨度, 1960-1989)의 「소리의 뼈」는 시인이 응시하는 침묵의 의미였고,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t Johann Wittgenstein, 1889-1951)의 『철학적 탐구』는 동일한 언어라도 사용되는 맥락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밝혔다. 시인보다 전사라 불리기를 원했던 김남주(金南柱, 1946-1994)의 「어떤 관료」는 영혼 없는 관료를 읊었고, 한나 아렌드(Hanna Arendt, 1906-1975)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사유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 물었다.

강은교(姜恩喬, 1945 - )의 「물길의 소리」는 물소리에 대한 깊은 상념이었고,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는 우발성과 마주침의 철학을 주장했다. 박정대(朴正大, 1965 - )의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는 에로티즘을 노래했고, 바타이유(George Bataille, 1897-1962)는 에로티즘은 동물적인 것과 전혀 무관하다고 역설한 철학자였다. 유하(庾河, 1963 - )의 「오징어 - 여는 시」는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유혹과 거기에 반응하는 인간의 욕망을 노래했고,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자본주의와 욕망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파악했다. 

원재훈(元載勛, 1961- )의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 그리운 102」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심정을 노래했고, 레비나스(Emmanuel Ievinas, 1906-1995)는 타자의 문제에 집착했던 철학자였다. 황동규(黃東奎, 1938- )의 「꿈, 견디기 힘든」은 ‘꿈’으로 상징되는 진정한 삶에 대해 읊었고, 니체(Friedrich Wihelm Nietzsche, 1844-1900)는 망각을 고유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로 보았다.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의 「하······ 그림자가 없다」는 도처에 편재하는 권력에 맞서 고단한 싸움을 전개하자는 역설을 노래했고, 푸코(Michel Paul Foucault, 1926-1984)의 미시정치학micro-politics은 개인들이 의식하기 힘든 미시적 차원에서 교묘하게 이루어지는 권력을 밝혔다.

도종환(都鍾煥 , 1954- )은 「가구」에서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은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좌절시키면서 우리 삶에 개입하는 존재를 타자라고 했다. 김춘수(金春洙, 1922-2004)의 「어둠」은 의미와 무의미와 관련을 노래했고,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인간을 세계의 모든 존재자들에 대해 열려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최두석(崔斗錫, 1955- )의 「성에꽃」은 다양한 것들의 우연한 마주침과 거기서 피어나는 흔적을,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리좀rhizome'은 뿌리줄기의 활동은 마주침과 그 흔적을 상징했다.

최영미(崔泳美, 1961- )의 「茶(차)와 동정(同情)」은 사랑과 욕망의 느낌을 진솔하게 드러냈고,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인간은 스스로 본질을 만드는 존재임을 밝혔다. 가장 감성적인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최명란(崔明蘭, 1963- )은 「아우슈비츠 이후」에서 그 충격을 그렸고,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1903-1969)는 보편자 또는 개념에 의해 억압된 개별자 혹은 비개념적인 것들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방시키려고 했다. 오규원(吳圭原, 1941-2007)의 「죽고 난 뒤의 팬티」는 죽음과 삶을 대하는 시인의 속내를 피력했고,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차이difference'가 모든 것의 의미를 규정한다고 통찰했다.

문둥이 시인 한하운(韓何雲, 1920-1975)의 「전라도길 - 소록도(小鹿島) 가는 길에」서와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 )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해 아무렇게나 죽일 수 있는 존재를 가리켰다. 정현종(鄭玄宗, 1939- )은 「섬」에서 인간은 고립과 단절의 존재이지만 그것을 넘어서려 발버둥치는 존재를, 메를로 퐁티(Maurice Merieau-Ponty, 1908-1961)는 인간의 정신 혹은 의식이 육체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역설했다. 이상(李箱, 1910-1937)은 「AU MAGASIN DE NOUVEAUTES」에서 1930년 경성 명동에 세워진 미쓰코시三越 백화점을 노래했고,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 1924-1998)는 포스트모던이란 바로 모던의 핵심, 즉 무한히 새로움을 반복해야 할 강박증적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황지우(黃芝雨, 1952- )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사랑하는 사람의 애끓는 기다림을 읊었고, 바디우(Alain Badiou, 1937- )는 사랑에 대한 통념을 여지없이 흔들어놓은 철학자였다. 박찬일(朴贊一, 1956- )은 「팔당대교 이야기」에서 인간의 생명도 효율성 논리로 재단하는 현대사회를 풍자했고, 호네트(Axel Honneth, 1949- )는 사랑, 인정, 혹은 관심을 받으려는 욕망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통찰했다. 5월 광주의 시인 김준태(金準泰, 1948- )의 「길 - 밭에 가서 다시 일어서기 1」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시인을, 박동환(朴東煥, 1936- )은 도시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생명과 사유의 논리를 한국어로 사유했던 철학자였다. 마지막은 강은교의 「물길의 소리」(84쪽)의 전문이다.

 

그는 물소리는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렇군, 물소리는 물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 물이 바위를 넘어가는 소리, 물이 바람에 항거하는 소리, 물이 바삐 바삐 은빛 달을 앉히는 소리, 물이 은빛 별의 허리를 쓰다듬는 소리, 물이 소나무의 뿌리를 매만지는 소리······ 물이 햇살을 핥는 소리, 핥아대며 반짝이는 소리, 물이 길을 찾아가는 소리······ // 가만히 눈을 감고 귀에 손을 대고 있으면 들린다. 물끼리 몸을 비비는 소리가. 물끼리 가슴을 흔들며 비비는 소리가. 몸이 젖는 것도 모르고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비늘 비비는 소리가······ // 심장에서 심장으로 길을 이루어 흐르는 소리가. 물길의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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