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지은이 : 진중권
펴낸곳 : 개마고원
사람이 책과 만나는 인연은 때와 장소가 있었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그동안 네 번 판쇄를 찍어냈다. 1998년 11월 초판과 2008년 6월 개정판은 두 권이었다. 내가 잡은 책은 2013년 8월 개정합본판이었다. 2022년 6월 정가인하본이 나왔다. 200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눈길을 끄는 표제에 끌렸으나 두 권에서 한 권이 품절 상태였다. 머뭇거리다 시기를 놓쳤고 책은 잊혀졌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책장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미학 오디세이』를 다시 손에 들었다. 군립도서관 검색창에 저자를 입력하니 줄줄이 책이 쏟아졌다. 십 여 권의 책들을 대여도서 목록에 올렸다.
출판사 《개마고원》이 반가웠다. 학창시절 나의 독서목록에 즐겨 등장한 출판사 중 한 곳이었다. 국내 출판사는 약 2만 여개다. 독자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정도로 책을 내는 출판사는 1,000여 곳이다.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이 인정하는 출판사는 200여 곳이었다. 다행히 대중 사회과학서적 출판사도 얼굴을 내밀었다. 무엇보다 10여 년 전 저쪽, 《개마고원》은 ‘안티조선’ 운동의 진앙지였고, 전략거점이었다. 표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조갑제의 박정희 찬양소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패러디했다.
내가 잡은 〈개정합본호〉는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며 출간되었다. “사실 이 책은 오래 전에 폐기됐어야 했다.······. 두 번의 리버럴한 정권에 뒤이어 보수정권이 연속으로 집권하면서 사회는 다시 과거의 권위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굳이 이 책이 필요 없는 시기가 빨리 왔으면 한다.” |머리말|의 일부분이다. 책은 한국 우익 이데올로기의 민낯을 드러냈다. 저자는 극우들의 주장을 담은 텍스트를 현란한 풍자와 조롱으로 까발렸다. 543쪽의 제법 두꺼운 양장본을 읽으면서 나는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인간의 길』의 이인화, 『선택』의 이문열, 박홍 신부・남용우 목사의 『레드 바이러스』,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진짜 주체사상론’ 황장엽의 『북한의 진실과 허위』, 이도형의 〈한국논단〉, 박성조의 조선일보 칼럼 「독일獨逸에선 더 가혹하다」, MB의 3・1절 담화,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한국의 축복”이라는 한승조,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안병직의 「식민지근대화론」, “몇 명의 위안부를 데리고 다니며 반일감정이나 조장하고······.”의 지만원, 정진홍 논설위원, ‘아기장수’ 설화의 진형준, 변희재, 뉴라이트, 일베까지. 그 시절 ‘엄마부대’의 주옥순은 뭘 하고 있었을까.
‘징, 징, 징기스칸······. 초원에서 들려오는 야성의 소리 『조선일보』의 몽골전사들, 불패의 영장 조갑제 장군의 지휘 아래 개가죽 투구를 쓰고, 허리에 육포를 차고 이 사람, 저 사람, 엄한 사람, 피융 피융 활을 쏘아대며 두그닥, 두그닥, 히히히히히힝’(459쪽) 한국의 극우진영에서 〈조선일보〉, 〈월간조선〉이 빠지면 이 빠진 잇못일 것이다. 그 시절, 조갑제는 편집장이었고,그 똘마니들 조선일보 기자들은 연일 빨갱이 만들기에 혈안이었다. 그 짓을 아직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 우익 이데올로기는 파시스트 나치 이데올로기였다.
내 조국은 핵전쟁을 찬양하는 소설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불가사의한 나라였다. 1993년 길거리의 사람들마다 하나같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손에 들렸다. 마치 애국의 상징처럼. 그 열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나는 1994년 한여름 면접에서 그 책을 또 만났다. 그는 국문학 전공의 수험자에게 애국심을 내세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별 이상한 인간을 마주쳤다는 듯 면접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면접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당연히 읽어 보셨겠죠.
수험자: 그 책은 소설이 아닙니다. 무협지 수준이죠.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0) | 2022.11.03 |
---|---|
편합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1) | 2022.11.02 |
격렬비열도 (0) | 2022.10.28 |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0) | 2022.10.27 |
인간의 악에게 묻는다 (0) | 2022.10.26 |